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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나라의 세시풍속

DRAGON 2009. 10. 9. 08:01

 

 

우리나라의 세시풍속[歲時風俗]

◐ 세시풍속[歲時風俗] ◑

세시풍속(歲時風俗)

세시(歲時)·세사(歲事)·월령(月令)·시령(時令) 등으로도 불리고 근래에는 연중행사라는 말도 쓴다.
세시풍속은 태음력(太陰曆)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특히 달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원래 음력은 태양태음력을 말한다.
이를테면 순전한 음력이 아니라 계절과 역일(曆日)의 조화를 고려하여 태음력을 가미한 태음력과 태양력의 혼합이다.
따라서 세시풍속은 음력과 양력이 혼합된 태음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한 해를 기준으로 달마다 배분되어 있는 것이다.
달의 주기성과 변화되는 생산성은 한국의 세시풍속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매 절기마다 상이한 풍습을 만들었다.
한국의 세시풍속 역사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마한의 농공시필기(農功始畢期)인 5월과 10월의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 등은 모두 세시행사로 인정된다.
〈삼국사기〉의 추석·수리(단오)·유두, 〈삼국유사〉의 대보름 기록 등은 모두 삼국시기에 이미 세시풍속의 원형들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의 세시풍속이 대체로 전승되었으며 상원의 연등회와 팔관회같이 불교행사이면서 동시에 전국적인 세시행사가 확산되었다.
오늘날의 세시행사로 귀착된 것은 조선시대에 접어들어서이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의 주기는 농경의 주기와 관련되기 때문에 계절의 분류 역시 농경의 각 주기를 따랐다.
24절기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경우 봄은 양력 2월, 음력으로는 정월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세시행사의 모태가 되는 자료는 조선 후기의 세시기들인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경도잡지 京都雜志〉 등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세시행사들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도 많으나 대개의 풍속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세시의 변화도 필연적이므로 오늘날 현대생활에 알맞게 축소·변형된 것이다. [다음 백과사전-http://enc.daum.net/dic100]


세시풍속(歲時風俗)

세시풍속이란 일년 중 철을 따라서 행하여지는 자연 및 인간사에 관한 행사를 말한다.
한 나라의 세시풍속은 그 나라의 정신의 소산이며, 문화의 소산이므로 아름답고 선량한 세시풍속을 가진 나라는 흥하였고, 퇴폐하고 타락한 세시풍속을 가진 나라는 망하였다.
다른 민족이 한 민족을 침략하여 국토를 빼앗으면 제일 먼저 행하는 정책이 그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의 미풍양속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의 옛 세시에 따르는 연중행사등이 기록된 문헌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실기등에 총체적으로 나와 있으나 세시풍속만을 기록한 문헌은 그 수가 적으며 조선 말 홍석모님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유득공님의 경도잡지(京都雜志) 김매순님의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 등 몇편이 있다.
우리민족이 예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명절의 행사는 농경의례적인것과 민족의 제전과 관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것은 한 해를 살아가는데 생활의 단조로움에 활력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해왔다.
연초에는 농작의 풍요를 위해서, 파종기에는 그 식물의 생명력의 숙성을 위하여, 그리고 수확기에는 추수의 감사를 위하여 다양한 행사들이 이루어진다.
평소의 일손을 쉬고 시절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옷으로 갈아 입고, 가족이나 부족 단위의 제사 또는 마을 단위의 축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중 행사들은 단순히 생활에 활기를 줄 뿐만이 아니고 그 집단 나름의 사회적인 결합을 재확인 시키기도 하고, 민족적인 일체감을 부활시켜 주기도 한다.[세시풍속과음식-http://my.dreamwiz.com/mylee2000]

① 정월


설날(음력1월1일)

원일(元日)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제액초복(除厄招福)을 하는 안택(安宅)을 한다.
만나는 이웃간에 덕담(德談)을 나누며 친지들을 찾아 세배를 다닌다.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접대하며 백병(白餠)과 병탕(떡국)을 준비한다.
대문에 설그림을 붙이는 세화(歲畵)·문배(門排)·계호화(鷄虎畵) 풍습도 있다.
설날부터 열이틀 동안은 12간지(干支)에 따라 일진(日辰)을 정해 이에 따라 갖가지 금기가 행해진다.
그해에 삼재가 든 사람은 삼재법(三災法)을 행해 액땜을 했으며 오행점(五行占)·소발(燒髮)의 풍습이 있었다.
관아에서는 새해 인사를 하는 신세문안(新歲問安), 명함을 받치는 세함(歲銜), 시를 받치는 연상시(延祥詩) 등이 행해졌다.


정조차례

설날 아침 일찍 제물을 사당에 진설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정조차례라 한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데 이를 세배라 하고, 어린이들은 설빔으로 새 옷을 입는다.
또한 세배 때 대접하는 음식과 술을 세찬, 세주라 한다.


조상님께 전하는 감사의 마음


차례지내기


원일음식

떡국.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원일음식으로 손님접대에도 쓰이는 세찬이다.
세속에서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 그릇 먹었냐고 하는 것으로 불리었다.


떡국 드세요


세배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
《열양세시기(洌 陽歲時記)》원일(元日)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설빔]`이라 한다 하였다


설빔 입고 나들이


복조리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어둠 속에서 복조리 사라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는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 1년 동안 소용되는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밤에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 산다.
설날 이른 아침에 복조리를 사 두면 1년동안 복을 많이 받는다는 데서 설날 아침에 사는 조리를 복조리라고 한다.


복조리 , 한해 풍년과 일년내내 복이 온다는 믿음의 상징



★...한해의 풍년은 물론 1년 내내 복이 들어 온다는 믿음의 상징... 복조리는 섣달 그믐날, 집집마다 복 많이 받으라고 조리를 마당에 던져 놓은 후 정월 대보름날 안에 돈을 받으러 다녔다. 복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조리값은 깎지 않았으며 쌀로 받아가던 시절도 있었다. 복조리는 안방 또는 마루 기둥에 걸어 놓고 그 안에 성냥 초,동전, 곡식 등을 담았다. 

"설에 등장한 복조리… 색동주머니… 새해 다복 기원합니다"


★...설을 앞두고 복조리와, 돈을 담는 앙증맞은 색동주머니가 길거리에 나왔다. 오는 복,가는 복 알뜰하게 챙겨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해본다. 
 
널뛰기
정초에 소녀와 젊은 여자들이 하는 놀이입니다.
넓이 한 자에 길이는 열 자쯤 되는 두꺼운 널을 짚단이나 가마니때기 따위로 가운데를 괴어 놓고, 양쪽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서로 발을 굴러 공주에 높이 솟았다 내려섰다 하는 놀이다.


널뛰기


윷놀이

겨우내 농삿일이 한가해지고 또 방에서 즐길 수 있는 정초의 놀이로 우리의 생활에서 뗄 수 없는 놀이가 되었다.
윷은 어른 남자용과 부녀자용의 두 가지가 있다.
남자가 쓰는 윷은 밤나무를 베어다 크고 굵게 만들며, 겉은 검고 안쪽은 흰빛이므로 등잔불에서도 잘보인다.
또한 부녀자들이 쓰는 윷은 박달나무를 곱게 다듬어 남자용보다 작게 만들어지며 윷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좋고 매끄러워서 손에 닿는 느낌도 좋다고 한다.
윷은 손에 쥐었을 때, 네 쪽이 손안에 꼭 들면 알맞은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 이상 몇 사람이든지 편을 짜서 하는 놀이로 윷이 던져졌다 떨어졌을 때의 모양으로 하나가 잦혀지면 도, 두 개가 잦혀지면 개, 세 개가 잦혀지면 걸, 모두 잦혀지면 윷, 모두 엎어지면 모라고 하며 모는 5, 윷은 4, 걸은 3, 개는 2, 도는 1밭씩 앞으로 가게되며 많이 갈 수록 좋다.
도·개·걸·윷·모는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가리킨다


 
 
정월대보름(음력1월15일)

정월은 한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해를 설계하는 달이다. 정월대보름을 한자어로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삼원의 하나이다.
대보름 아침에는 부스럼이 생기지 말라는 의미에서 견과류의 부럼을 깨무는 작절(嚼癤)과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신다. 이때 부럼의 껍질을 직접 깨물어 까는 것이 특징이다.
남에게 더위를 팔아서 한여름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매서(賣暑)도 행한다.
낟가리대[禾竿]를 세우고 제웅을 만들어 버리며, 오곡잡반(五穀雜飯)·약식·복쌈을 만들어서 먹고, 대추나무시집보내기(嫁樹)와 안택도 이루어진다.
5가지의 곡물로 만든 오곡밥과 나물을 하루에 10번 먹었다.
대보름 저녁에는 달이 뜰 무렵 달맞이를 즐긴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마을공동체의 동신제(洞神祭)가 집중적으로 열리며 지신밟기·쥐불놀이·동채싸움·줄다리기·기와밟기·쇠머리대기·널뛰기·제기차기·연날리기·회회아(回回兒)·돈던지기[擲錢]·다리밟기[踏橋]·돌싸움[石戰] 등 다양한 민속놀이들이 펼쳐진다.
보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였는데, 가족중에 누군가 잠이 들면 밀가루 등으로 눈썹을 하얗게 칠해놓기도 했다.


대보름의 유래


★...옛날 조상들은 달이 밝은 밤을 신비롭게 여겼다. 특히 보름날 밤에는 둥근 달을 보며 더욱 흥겨워 했다. 그래서 일 년 중에서도 첫 번째 찾아오는 정월 보름은 더욱 소중히 여겨서 "대보름"이라고 보르게 된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뜨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며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풍년이 들기를 빌곤 했다.

부럼

대보름날 새벽에 날밤,호도,은행,무,잣,땅콩 등을 깨물면서 "일 년 열두 달 동안 무사 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축수하며, 깨무는 '딱'소리에 잡귀가 물러간다고 했으며 이를 단단히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부럼 깨고 건강할래요


부럼 먹으면 부스럼 안나죠


귀밝이술

대보름날 아침 웃어른께 데우지 않은 청주를 드시게 하여 귀가 밝아지길 바라며 또한 일 년 내내 좋은 소리 듣기를 기원하였다.


오곡밥

정월 대보름날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서 지은 밥으로 성이 다른 세 집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수가 좋다고 하여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이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하여 틈틈이 여러 번을 먹는다.


복(福)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 '정월 대보름'


대보름엔 오곡밥 드세요


달맞이

대보름날 저녁, 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려고, 횃불을 들고 뒷동산에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달이 솟아 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고 두손을 모아 합장하고 농부는 풍년을, 도령은 장원 급제를, 처녀.총각은 시집.장가 가기를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또한 대보름날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도 믿었다.

 

쥐불놀이

14일과 대보름날 밤에는 들에 나가서 논둑 밭둑에 불을 놓아 태우는데, 이를 쥐불놀이라고한다.
쥐불놀이는 잡귀를 쫓기 위해서이지만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을 죽이고, 그 재는 봄에 새싹이 날 때 거름이 된다.
쥐불놀이를 하면 1년 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액을 쫓는다고 믿었다.


‘풍요를 소원하며…’ 쥐불놓이


달집 태우기

정월 대보름날 달이 뜰 무렵 마을 뒷산이나 마당에서 달집 태우기를 한다.
소나무를 세우고, 그옆에 집집마다에서 얻어 온 짚단을 세우면 마치 큰 노적처럼 된다.
달이 떠서 막 보일 적에 여기에 불을 붙인다.
불길이 훨훨 잘 타야만 마을이 편안하고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집 태울 때에 마을 사람들은 농악을 치며 즐겁게 논다.


달집 태우기


한해 소원성취 비옵니다


다리밟기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으면 1년 동안 다리 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며, 다리 열둘을 밟으면 일 년 열두 달 동안 건강하게 지내며 애을 면한다고 한다.
고려시대 부터 남녀가 쌍쌍이 다리를 밟았다고 전한다.
서울에서는 광교와 수표교가 가장 혼잡했다고 한다.


다리밟기, 올 한해도 탈없이


“올해 소원 다 이뤄졌으면”


지신밟기

음력 정초에 지신을 진압하여 잡귀를 물리치고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빌던 마을행사
지방에 따라 마당밟기·매귀라고도 한다. 해마다 음력 정월 3~14일에 행하며 지금은 영남지방에 많이 남아 있다.
꽹과리·북·장구·징 등을 갖춘 풍물패가 앞서고 양반·하동(河童)·포수·머슴·각시 등이 뒤따르며 길놀이를 한다.
놀이의 맨 처음은 주산(主山) 지신풀이로, 마을의 주산을 찾아가서 서낭목신이 있는 서낭당 앞에서 제사를 올린 후 지신풀이를 한다.
다음은 당산신을 위한 제사를 올린 후 지신풀이를 하며, 이후부터 각 집을 돈다.
지신밟기패가 집에 오면 주인은 정화수를 떠놓고 지신밟기패는 각각 연희와 소리를 하며 지신풀이를 한다.
지신풀이가 끝나면 주인은 음식을 베풀고 성금을 낸다.
지신밟기패는 여기서 모인 성금으로 마을 공동사업비용에 쓴다


지신밟기


★...풍물패의 지신밟기에 인근상가 주인들이 나와 소원을 빌고 술과 음식을 내왔다

복을 기원합니다


 

입춘(立春, 양력2월4.5일경)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국태민안(國泰民安) 같은 춘첩자(春帖子)나 춘축(春祝)을 대문간에 써붙여 봄을 맞이했다.
입춘날에는 춘련(春聯) 또는 입춘첩(立春帖)이라 하여 좋은 글 곧 '立春大吉'등을 써서 대문에 붙이고 일 년이 길하기를 축원하였다.
입춘 오신반인(立春五辛盤)인 시고 매운 생채 요리를 만들어 새봄의 미각을 돋게 하였다.
또한 장을 담그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시 오는 봄 `입춘대길`


전국 유일 제주 입춘굿놀이


 

② 2월


이월 초하루(음력2월1일/중화절 中和節)

음력 이월 초하룻날을 중화절이라 한다.
정조 병진년(1766)년에 중국 당나라의 중화절을 본떠서 농삿일을 시작하는 날로 삼았다.
이 달부터는 농사 준비가 시작되는 시기이므로 노비에게 음식을 마련해 주고 쉬게 했다.
보름에 세웠던 낟가리대를 쓰러뜨리고, 농가에서는 이삭을 내려다가 떡가루를 만들어 송편을 빚어 노비들에게 나이 수대로 나누어 먹였고 하루를 쉬게 한다.
그래서 노비일 또는 머슴날이라 한다.
어촌에서는 흰떡을 쳐서 굵게 비벼 용떡을 만들어 용신에게 바치고 바다를 평온하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다.
이날은 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으면 노래기가 없어진다고도 하였고 또한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도 한다.
이 날은 노래기날이라고도 하여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여 향랑각시를 쫓는다.
남쪽지방에서는 영등신(靈登神)맞이를 행한다.
온 집안을 깨끗하게 쓸고 닦는 대청소를 하는 날(노래기 부적)이며, 머슴날, 풍신제, 콩볶이등도한다.


콩볶기

이 날 콩을 볶아 먹는데, 콩을 볶을 때 새알 볶아라, 쥐알 볶아라, 콩 볶아라. 하고 주문을 외운다.
이는 새와 쥐의 피해를 막기위해서 인데, 무사태평과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이다


노비송편

노비일의 송편을 노비 송편이라 한다. 쌀가루로 흰떡을 만들어 큰 것은 손바닥만하게, 작게는 계란만하게 만든다.
소는 팥, 까만 콩, 푸른 콩, 꿀 또는 대추살, 삶은 미나리 등을 넣어 시루에 찌는데 이때 솔잎을 사이에 두고 쪄 내어 참기름을 바른다


③ 3월


삼짇날(음력3월3일)

삼짇날은 봄을 알리는 명절이다.
이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하며,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 나오기 시작하는 날이라고도 한다.
또한 나비나 새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경북 지방에서는 이날 뱀을 보면 운수가 좋다고 하고, 또 흰나비를 보면 그 해 상을 당하고 노랑나비를 보면 길하다고 한다.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며, 집안 수리를 한다.
아울러 농경제(農耕祭)를 행함으로써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전국 각처에서는 한량들이 모여 편을 짜 활쏘기를 하기도 하며, 닭싸움을 즐기기도 한다.
사내 아이들은 물이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놀이를 즐기고, 계집아이들은 대나무쪽에다 풀을 뜯어 각시인형을 만들어 각시놀음을 즐기기도 한다.
완연한 봄이 다가오면서 가정에 묶여 있던 여자들은 산과 들로 나가 화전(花煎)놀이를 즐기며 남자들은 화류(花柳)·사회(射會)를 즐긴다.


화전놀이

화류놀이·꽃놀이라고도 한다. 여자들이 봄에 산이나 들로 나가 하루를 즐기며 놀던 풍습이다.
본래 한 가문 친척간의 남녀가 모여 노는 놀이였으나 가까운 동네의 친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변화되면서 여자들의 놀이가 되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여 밖으로 나가 꽃싸움이나 꽃단치기를 하고, 두견화전을 부쳐 먹었다.
젊은 새댁이나 처녀들이 화전을 두고 각기 가사를 지으면 좌상노인이 장원을 뽑았으며 노소가 참석하여 1명이 한 구절씩 불러서 장편가사인 〈화수가 花隨歌〉를 짓기도 했다.
이날은 여성들에게 1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의 하나였다.


삼짇날 노랑나비 "올 운수 좋대요"


★...옛부터 음력 삼월 초사흗날인 삼월 삼짇날은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며 나비가 나온다는 봄철 최대 길일로 이날 노랑나비를 보면 그 해 운수가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식(寒食,淸明節 양력 4월 5.6일)

청명(淸明)이 되면 춘경(春耕)이 시작되며,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한식날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거나 벌초하고 성묘하는 한식절사(寒食節祀)를 행한다.
또한 탕평채(蕩平菜)·수란(水卵)·과하주(過夏酒)·증병(甑餠)·사마주(四馬酒) 등의 절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조상님 굽어살피소서"


④ 4월


초파일(음력4월8일/석가탄신일)

초파일에 신도들은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며 신도가 아니어도 연등놀이를 즐긴다.
놀이로 수부희(물장구)를 즐기며 증편(蒸餠)·어채(魚菜)·어만두(魚饅頭)·미나리강회 같은 절식을 즐긴다.
연등 놀이를 하는 초파일 저녁을 등석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전례에 따라 야간의 통행을 허락하며 서울 장안의 사람들은 산기슭에 올라가 달아놓은 등 구경을 한다.
혹 악기를 들고 쏘다니거나 등을 들고 돌아다니는 제등행렬을 하면서 밤새도록 떠들썩하게 그치지 않았다.
연등 놀이가 왕성한 시기에는 낙화희라 해서 일종의 불꽃놀이처럼 등간에 매달린 등 줄 사이에 숯과 사기 파편을 넣은 주머니를 매달고 불을 붙여 터뜨리며 불꽃을 즐기기도 했다.


서울 도심 연등행진


소밥

초파일에 느릅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차려 놓고 손님을 천해서 음식을 대접하는데 이를 석가의 탄신일에 고기 반찬 없는 소밥이라 합니다


 

⑤ 5월


단오(端午, 음력5월5일)

단오절에는 수리치떡과 밀전병을 준비하고, 여자들은 창포로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들은 씨름을 즐긴다.
더위를 대비하여 단오선(端午扇)을 선사하며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붙인다.
이 날은 양기가 가득 찬 날이라 하여 익모초 같은 약초를 뜯어서 말린다.


수릿날

이것은 모내기 파종을 끝 맺는 5월이면 군중들이 모여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고 가무와 음주를 즐겼다고 한다.


단오날 먹는 수릿 떡


창포물 머리감기

오월 초닷샛날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또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창포를 끓인 물에 머리를 감았다.
창포는 주로 물가에서 자라는데 뿌리 줄기가 옆으로 나면서 계속 새로운 싹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 곳에 군락을 이룬다. 창포는 한방에서 뿌리줄기를 방향성 건위제로 사용한다.
창포는 향기가 강하고 잎이 칼처럼 곧게 자라기에 나쁜 귀신이 범접 못하게 한다고 옛사람들은 믿었을 것이다


창포물에 머리 감기


단오제

단오날에 지방에서는 그 지방 향토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다.
강원도, 강릉과 삼척에서 행해지는 단오제가 가장 유명한데, 특히 강릉의 단오제는 커다란 축제 형태로 여러 날 행하여진다.
수많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40-50여명의 무격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는데, 대관령의 성황신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고 가면 놀이와 유희를 즐기면서 그 해의 풍년과 대관령의 산행 안전을 기원한다.


단오제


 

⑥ 6월


유두(流頭, 음력6월15일)

'유두'는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란 말에서 온 것이며 풍속은 신라시대에서 온 것이다.
고려시대에 씌여진 <동도유속집>에 "6월 보름을 유두일이라 하고 맑은 개울에서 멱을 감고, 궂은 것을 털어버리고 선비들은 유두 음식을 차려 물가에서 풍월을 읊는 유두연(流頭宴)을 베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유두에는 유두연(流頭宴)을 베푼다.
수단(水團)·건단(乾團)·상화병(霜花餠)·연병(蓮餠)·유두면(流頭麵) 같은 절식을 먹는다.
음식을 장만해 산간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서늘하게 하루를 보낸다.


유두절 전통음식 만드는 할머니들


삼복(三伏)

4계절 가운데 초복, 중복, 말복이 지나는 30일 동안은 장마 뒤여서 습기가 많은 때고 더위가 심할 때이다.
산의 물가에서 복놀이를 하며, 오행의 원리로 열이 있는 것을 먹음으로써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보양하였다.
복 음식으로 삼계탕,개장국(보신탕),닭죽, 육개장, 임자수탕(깻국),민어국, 팥죽, 계절과일 등이 있다.
삼계탕과 보신탕은 조선 후기의 기록인 <동국세시기><경도잡지><열량세시기>에 전한다.
붉은팥으로 죽을 쑤어 동지와 같은 의미로 잡귀를 빨간색으로 쫓아 열병을 예방하였다.
보신탕은 복중의 뜨거운 음식은 한여름 땀을 많이 흘려 허해진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더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복날에는 개를 잡아먹는것이 풍속인양 되었으나 속가의 일이었고, 사대부집안에서는 쇠고기를 얼큰하게 끓인 육개장을 개장국 대신으로 먹었고, 그외에도 삼계탕, 계절과일등을 넉넉히 먹어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하였다.


'몸보신 해볼까'


⑦ 7월


칠월칠석(음력7월7일)

7월 7일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칠석(七夕)이라 한다.
칠석날에는 은하수에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烏鵲橋)를 놓고, 동쪽의 견우성과 서쪽의 직녀성이 만나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느라 대체로 날이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인들은 술잔을 교환하면서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또한 볕이 좋을 때 옷과 책을 말리고, 집집마다 우물을 퍼 내어 청결히 한 다음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두고 칠성제를 지낸다.


“견우와 직녀가 만났어요”


"남원 오작교에서 사랑 나눠요"


“직녀가 그랬듯이…” 한옥마을 칠석 체험


백중(百中, 음력7월15일)

백종(百種)·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이때쯤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놓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절에서는 재(齋)를 올리고 공양을 드렸으며, 민간에서는 100가지의 과실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가정에서는 한창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차례를 올리고 백중잔치를 한다.
백중을 전후로 장이 섰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했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날 하루는 일손을 쉬고 머슴에게는 휴가와 돈을 주어 백중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백중장이 성시를 이루면 씨름판과 장치기 등의 놀이도 펼쳐진다.
또한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를 북돋아준다.
백중 때가 되면 농사일이 거의 끝나서 농부들은 호미를 씻어두는데 이를 '호미씻이'라고 한다.
원래 백중날 하루만은 일손을 놓고 쉬지만 제주도에서는 해산물 따기에 분주하다.
그것은 백중날에 살진 해산물이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백중(百中)에는 백중난장이 열리어 농민들의 제축의 마당이 형성되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하고, 망혼일(亡魂日)이라 하여 조상의 넋을 위로하는 날이기도 하다.


담양 전통 줄다리기 재현


⑧ 8월


추석(음력8월15일/중추절/팔월한가위)

농사일도 거의 끝나 햇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시기이기에 새로 수확한 곡식이나 과실로 사당에 차례를 올리는데, 절차는 설날과 같은 절차를 따른다.
이와 함께 한식 때 손질한 이후 여름철 내내 풀로 무성한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함으로써 겨울을 잘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추석(秋夕)은 가배(嘉俳)라 부르며 조상에 대한 성묘를 으뜸으로 생각한다.
강강술래·거북놀이 등을 즐기며 송편·인병(인절미)·율단자(栗團子) 같은 절식을 먹는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는 전라 남도 남쪽 바닷가 지방 부녀자들의 놀이, 추석날 밤에 새옷으로 단장한 마을의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한곳에 모여,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노는 놀이로 목청 좋은 사람이 맨 앞이나 원의 한 복판에 들어가 먼저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수월래'하고 후렴을 부르면서 춤을 추는데 처음에는 느리게 차츰 빨라져 힘이 빠지면 끝이난다.
강강수월래의 유래는 약 400년전 임진왜란 때 수군 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적군에게 우리쪽 군사의 많음을 알리기 위해 마을의 부녀자들을 모아서, 남자 옷을 입혀 우수영 근처에 있는 옥매산을 빙빙 돌며 춤을 추게 한데서 유래한다.


 
 

⑨ 9월


중양절(重陽節, 음력9월9일)

삼짇날에 왔던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는 날이다.
중양(重陽)또는 중구(重九)라 한다.중구란 말은 9가 겹쳤다는 뜻이고, 중양이란 홀수인 숫자가 2개 겹쳤다는 뜻이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 때부터 시작된 풍습으로 술친구를 찾아가거나 술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선비들은 단풍을 주제로 시를 짓고 부녀자들은 내방 가사를 읊고 농부들은 농악을 울리며 즐겼다.
중양(重陽)에는 단풍놀이를 즐기며 국화전·화채 같은 절식을 먹는다.


단풍놀이

서울 풍속에 중양절을 맞이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남산이나 북악산 등에 올라가 시식을 배불리 먹고 하루를 흥겹게 지냈는데, 이를 단풍놀이라 한다.
이는 본래 중국 후한때 환경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된 '등고의 풍속을 답습한 것이다.
특히 시인, 묵객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해 국화꽃잎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풍류를 즐기면서 가을을 만끽했다.
이러한 전통은 가을 소풍이나 단풍놀이로 현대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⑩ 10월


상달(上月)

10월에는 입동, 소설의 절기가 있는 계절로 겨울 날씨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햇볕이 따뜻하여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민가에서는 가장 높은 달이라 했다.
10월은 상달이라하여 조상에 대한 시제및 고사, 성주제를 지내는는데 그런 제례 행사는 감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풍속들이다
이 달의 무오일(戊午日)인 말 날에는 상마일(上馬日)로 쳐서 말을 위해 마굿간 앞에 시루 팥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고 길일을 택해서 신곡을 가지고 떡을 찧고 술을 빚어서 터줏대감굿을 하는데 이것을 성주제라 한다.
5대조 이상의 조상께 시제(時祭)를 올리고 단군에게 신곡을 드리는 제사인 농공제를 지낸다.
10월의 시식으로는 시루떡, 무 시루떡, 만두국, 열구자탕, 변씨 만두, 연포탕, 애탕, 애단자, 밀단고, 강정 등이 있으며 김장을 담근다.
10월 상달의 고사떡은 추수 감사의 뜻이 담긴 절식이고 대추, 감, 밤도 저장하여 두면 겨울을 알리는 첫서리가 내리더라도 농사하는 백성들은 겨을 채비를 마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된다.


⑪ 11월


동지(冬至, 양력 12월 22.23일)

대설과 소한 사이에 오는 24절기의 하나.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대설 15일 후 이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고 죽물을 대문간에 뿌려 악귀를 쫓는다.
동지를 지나면서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많은 곳에서 축제일, 또는 1년의 시작일로 삼았다. 서양 달력의 1월 1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이 동지 축제가 변형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지를 작은설이라 부르며 크게 축하했다. 찹쌀로 된 새알이 든 동지팥죽을 먹고,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이 있다.


팥죽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바치고, 방.마루.광.장독대 같은 데에 한 그릇씩 떠놓은 다음에 먹는데 이는 팥죽이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 이렇게 만든답니다"


 
 

⑫ 12월


납일(臘日/가평절)(12월에 날을 잡아 지내는 섣달제사)

)에는 납향(臘享) 제사를 행하며 납약(臘藥)을 만들어 나누어준다.
납일에 나라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국민들은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납향'(臘享)이라고 했다.
농촌에서는 납일 밤에 새 잡는 민속이 있었는데, 이는 납일에 잡은 새고기는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고 침을 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납일에 내린 눈은 약으로 썼는데, 눈을 곱게 받아 깨끗한 독 안에 담아두었다가 그 녹은 물로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을 씻으면 낫는다고 하며, 김장독에 넣으면 김장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납일 제사를 위한 수렵짐승은 대개 서울 부근의 산에서 잡아 진상했으며, 정조 때 이 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새잡이

납일에 잡는 짐승의 고기는 사람에게 모두 좋다고 하는데, 특히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고 하거나 병약한 사람에게 좋다 해서 그물이나 총을 사용해서 참새를 잡는다.


납설수

납일에 내린 눈을 녹여 그 물을 납설수라 하는데, 약으로 쓰고 그 물에 수건을 적셔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납설수는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고, 의류와 서적의 좀을 막을 수 있으며, 눈을 씻으면 안질을 막고 눈이 좋아진다고 한다.


세시풍속과 민속놀이

◐ 민속놀이 ◑

민속놀이[民俗--]

한국의 민속놀이(韓國의 民俗놀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놀이로, 예로부터 주로 서민층에서 명절이나 혹은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 예식의 하나로서 여흥을 돋구고자 생겨났다.
언제 이와 같은 놀이가 생겼는지는 오늘날까지 명확하지 않다.
민속놀이는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는가 하면, 어른들만이 하는 놀이, 소년, 소녀들끼리 하는 놀이, 여자들 간에 혹은 남자들 간에만 하는 놀이가 있다.
놀이의 성격을 벗어나 힘과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로 발전한 것으로는 씨름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윷놀이 / 팔자놀이 / 말타기 놀이 / 고누 놀이 / 투호놀이 / 널뛰기 / 연날리기
함 사고팔기 / 동체싸움(차전놀이) / 닭싸움 / 그네타기 / 가마타기 / 승경도
팽이치기 / 제기차기 / 장치기 / 자치기 / 탈춤 / 비석치기 / 땅따먹기 / 공기놀이
[다음백과사전-http://enc.daum.net/dic100]

줄넘기

양끝에 손잡이가 달린 끈을 가지고 혼자 또는 여럿이 즐기는 놀이.
19세기에 시작된 줄넘기는 두 경기자가 각기 한쪽 끝을 잡고 줄을 돌리면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줄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전통적으로 여자 아이들이 놀이터나 길가에서 즐기던 놀이다.
줄의 길이는 사람의 키보다 1.5배 정도 큰 것이 좋으며, 한국에서는 새끼줄로 놀기도 했으나 지금은 고무로 된 줄을 쓴다.
놀이가 발전함에 따라 뛰는 방법도 점점 다양해졌다. 각 놀이자들은 줄을 돌릴 때 뛰어넘어 걸리지 않고 빠져나가야 한다.


"하늘까지 뛰어라" 즐거운 동심


굴렁쇠 굴리기

나무로 만든 술통을 뉘어 굴리며 놀던 데서 유래된 것으로, 굵은 철사를 둥글게 말아서 붙인 굴렁쇠를 끝이 ㄷ자나 Y자 모양인 긴 막대기의 홈에 대고 굴렁쇠가 넘어지지 않게 굴리면서 달린다.
처음에는 대나무를 둥글게 만든 것이나 헌 수레바퀴로 굴렁쇠를 만들었는데, 점차 철사나 살을 떼어낸 자전거테를 쓰기도 했다.
철사보다는 자전거테처럼 너비가 너른 것이 넘어지지 않고 오래 굴릴 수 있다.
큰길보다는 방향을 바꾸어가며 이리저리 굴릴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더 재미있으며 혼자서만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굴리기도 한다.
여럿이 굴리는 것을 기차놀이라고 하는데, 한 줄로 서서 한 사람의 허리께를 잡고 굴리기도 하고 편을 나누어 일정한 거리를 돌아오는 이어달리기로 놀기도 한다.
이 놀이는 평형감각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 때 한 어린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간 〈정적〉의 연출은 국내외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굴렁쇠 굴리기


연날리기

연을 하늘에 띄워 날리는 놀이.
연은 흔히 대나무로 살을 만들고 그 살 위에 종이를 붙여 장방형 또는 가오리 모양으로 형태를 만들고 실로 연결하여 하늘 높이 띄운다.
띄우는 기술이 익숙해지면 연줄 끊어먹기, 멀리 날리기 등의 방법으로 논다.
연날리기는 썰매타기, 팽이치기와 함께 겨울철을 대표하는 민속놀이이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했고, 전통적으로는 초겨울에 시작해서 이듬해 묵은 추위가 가시기 전에 끝났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는 시기는 정월 초하루(설날)부터 대보름까지였으며, 그 이후 연을 끊어서 날려보낸 다음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보름이 지났는데도 연을 날리는 사람을 보면 ‘고리백정’이라고 놀렸다고 하는데, 이는 연만 날리다가는 그 해 농사 준비가 늦어질까 염려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연은 형태나 구조가 다른 나라 연과 비교해 볼 때 과학적 원리를 적극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추위에 웅크리는 소극적인 자세보다 바람과 맞서는 적극성으로 추위를 몰아내던 조상들의 지혜가 듬뿍 담긴 놀이이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어린이들이 제기를 가지고 발로 차는 놀이.
제기는 구멍 뚫린 동전이나 엽전을 질긴 한지나 미농지, 비단 등으로 접어서 싼 다음, 양끝을 구멍을 꿰고 7~8cm 정도의 술이 달리게 그 끝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너풀거리게 한 것인데, 주로 겨울철에 많이 노는 놀이기구이다.
제기차기는 한 번 차고 땅을 딛고, 또 차고 땅을 딛는 '땅강아지'(맨제기), 두발을 번갈아 차는 '어지자지'(양발차기), 땅을 딛지 않고 계속 차는 '헐랭이'(발 들고차기) 등이 기본적인 방법이고, 그밖에 제기를 뒤로 차올리거나 발 등 바깥쪽으로 차는 뒷발차기, 차올린 제기를 입에 물었다 다시 차는 물지기(물기), 제기가 귀 위까지 올라가는 귀 위 차기, 키를 넘게 올려차는 키지기, 차서 머리 위에 올렸다가 다시 차는 언지기, 무릎으로 차는 무릎차기 등이 있다. 앞의 여러 방법 중에 1가지만 정해서 차기도 하고 기본적인 방법 3가지를 차는 '삼세가지'를 해서 놀이를 하는데, 진 쪽에서는 종들이기라 하여 이긴 사람의 서너 걸음 앞에서 그의 발부리에 제기를 던져준다.
그러면 이긴 사람이 이것을 멀리 차보내는데 진 쪽에서 그 제기를 잡거나 차는 사람이 헛발질을 하면 종들이기를 벗어난다.
이 놀이는 고대의 축국(蹴鞠)에서 발전된 것으로 어린이의 발 운동에 좋다.


제기차기


투호놀이

지난날, 화살같이 만든 청·홍의 긴 막대기를 일정한 거리의 저편에 놓은 병 속에 던져 넣어 그 수효의 많고 적음에 따라 승부를 겨루던 놀이.


투호놀이


투호놀이


닭싸움

한쪽 발을 뒤로 들어올리거나 앞으로 꺾어 손으로 잡고 상대방과 겨루는 놀이. 상대와 몸과 무릎을 맞부딪쳐 서로 쓰러뜨리는 놀이로, 그 자세가 닭이 서 있는 것 같이 불안하다고 해서 닭싸움이라고 한다. 무릎끼리 부딪친다고 무릎싸움, 한 발을 들고 외발로 서 있다고 해서 깨금발싸움·외발싸움이라고도 한다.
놀이방법이 간단하고 아무런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린이들뿐 아니라 청년들도 즐겨하는 놀이로, 우리 나라 전국에서 행해지는 놀이이다


공군 병사들 닭싸움 경기


팽이치기

얼음판이나 땅 위에서 팽이채를 이용해서 팽이를 쳐 돌리며 노는 아이들의 놀이. 썰매타기와 함께 겨울철을 대표하는 놀이이다.
얼음이 어는 겨울이 오면 너나없이 팽이를 들고 밖으로 나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았는데, 오래 전부터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놀이이다.
지방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있는데 평안도에서는 ‘세리’, 함경도에서는 ‘봉애’ ‘방애’, 경상도에서는 ‘뺑이’ ‘핑딩’, 전라도에서는 ‘뺑돌이’, 제주도에서는 ‘도래기’라고 하였고, 일부 지방에서는 ‘패이’ ‘빼리’ ‘포애’ ‘뺑생이’ ‘뱅오리’라고도 하였다.


팽이치기



 

출처 : 하리와 솔뫼
글쓴이 : 하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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