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행촌동 1972'
'집이 좁아 손님을 변변히 초대할 길이 없을 때
평상 하나 놓으면 그걸로 온 골목이 내 집 마당이고 거실이 되었다.
골목은 좁은 집을 열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공간이었다.
'서울 중림동 1984'
'강아지를 한 팔로 안은 소녀가 카메라가 신기한 듯 말똥말똥 바라본다.
얼굴은 흙먼지로 얼룩졌어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가득한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서울 문래동 1975'
'한겨울,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니 물을 끓여 세수를 한다.
'서울 아현동 1974'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아이를 어떻게 할까.
아저씨는 고민 끝에 리어카에 함께 태운다.
행여 아이가 떨어질까, 고무끈으로
임시 안전벨트까지 채우고 리어카를 몬다.
'서울 중림동 1973'
'아이들은 경계심이 없다.
골목 어귀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에게도
눈부신 웃음을 선물할 줄 안다.
'서울 수색 1979'
'온 동네 개들 다 집합해 꼬리 살랑대며 밥을 기다린다.
'서울 중림동 1991'
'골목 어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는 할아버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할아버지 옆을 지키는 늙은 개도 주인의 마음을 읽었는지 눈매가 축 처졌다.
'서울 행촌동 1977'
'보자기 하나 몸에 두르고 잔뜩 얼굴을 찌푸린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이발을 당하고 있다.
지긋이 바라보는 친구의 표정은 안 보이지만,
아마도 ‘이놈아, 이젠 네 차례야’ 하며 고소한 웃음을 짓진 않았을까.
'서울 중림동 1983'
'갑작스레 눈이 내린다.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소녀는 지붕 아래로
용케 눈을 피해 골목 사이를 쌩쌩 내달린다.
'서울 행촌동 1974'
'선풍기도 변변히 없는 집에서 더위를 피하려니
자연스레 러닝셔츠 차림이 된다.
더위를 먹었는지 기운 없는 강아지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는 아주머니 얼굴이 인자하다.
'서울 천호동 1969'
'골목 어귀에 천막 영화관이 들어서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각다귀 떼처럼 모여들었다.
비록 영화를 볼 순 없어도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으니까
높은 언덕길 겨울이면 절절...
판자집의 달동내 정이많았던 그곳
출 퇴근길에 분빈 교통수단 생각이 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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