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방

[스크랩] 피지

DRAGON 2010. 11. 15. 16:42

  
  
 
‘피지’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마치‘인도’가 어떤 나라라는 것처럼 어렵다. 인도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와 자연을 가졌고, 관광이 국가 주 수입원임에도 전혀 관광지답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져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깨닫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곳 바다 빛깔처럼 매번 볼 때마다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없는데다, 변화무쌍하고, 정열적이며, 찾는 이를 새롭게 해주는 마법을 지녔다고 할까.

이 곳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아도 매서운 한파의 계절이거나 휴가철 고된 삶 속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막연하게 떠올리게 되는 이상향의 남국, 또는 막연한 현실의 어려움 속에 빠져 있을 때 신을 찾아 두 팔을 하늘로 벌리듯, 뭔가 새로운 답을 줄 것만 같고, 지친 나를 언제나 환영해 줄 것만 같은 그런 푸근한 곳이 바로 피지다.
 
아름다운 대자연 ‘순수의 나라’

영화 ‘트루먼 쇼’에서 짐 케리가 그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신밧드의 모험- 오대양의 전설’에서 신밧드가 그랬듯이 피지는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그 무한한 자연의 아름다움으로‘순수의 나라’로 통한다.

남태평양의 한가운데 위치한 두 개의 큰 섬과 300여 개의 군도(群島)로 이루어진 피지는 예로부터 남태평양 교통의 중심지였다. 지리적으로는 멜라네시아에 속하지만 호주,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지역과도 가까워 이들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로‘남태평양의 십자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 역사학자들은 피지의 역사를 약 3천 년으로 보지만 선조들이 정확히 언제 어디로부터 들어와서 정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대추장 루투나소바소다가 그의 부족들을 이끌고 피지로 건너왔다는 전설과 간혹 발견되는 유물들로 이들이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로부터 인도네시아를 거쳐 태평양으로 이주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했다는 비세이세이 전통마을도 지금은 그들의 전통양식이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단지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추장 집과 현대식 교회만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 뿐이다.
 
대추장회의에서 국가 중대사 결정

1643년 네덜란드인 아벨 태즈먼이 발견해 서구사회에 알려졌고, 1774년 제임스 쿡 선장이, 1789년에는 ‘바운티의 반란’으로 유명한 윌리엄 블라이 선장이 48일간 표류하며 비티레부를 포함한 40여 개의 섬들을 확인했다.


1874년 영국령으로 선포됐다가 1970년 10월 10일 독립, 현재의 공화국을 이루었다. 인구의 절반은 피지인, 절반은 인도인이다. 물론 대통령과 의회도 있지만 피지인은 아직도 부족단위로 생활하며, 대추장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다. 수도는 비티레부 섬 동쪽 수바이며, 주요 관광지는 국제공항이 위치한 난디와 마마누다 군도, 야사와 지역 등이다. 

 

  
  
 
피지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그냥 쉬는 것이다.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방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훌륭한 휴식이 될 수 있지만, 피지에서 한 번 제대로 쉬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와인과 자동차의 경우, 고급스러운 맛에 한 번 빠지고 나면 등급을 낮출 수 없다는데, 여기에 ‘쉼’도 추가하고 싶다. 피지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 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에 누워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해먹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식사를 하거나 스노클링을 한 시간 정도 즐기고, 저녁엔 함께 여행 온 가족, 친구들과 두세 시간 수다를 떨며 근사하고 긴 저녁을 먹는다. 마지막으로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노곤하게 풀어진 몸으로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단순히 잠을 자고 먹고 노는 차원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흐르는 물에 씻는 기분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와 모든 것을 다 품을 듯한 너른 하늘의 모호한 경계 속에 있다 보면 나를 괴롭게 한 수많은 잡념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작게 묻혀버린다.

물론 일정 내내 쉬기만 해서도 안 된다. 피지의 매력적인 바다 속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스노클링, 바나나보트, 카누, 카약 등 피지에서 무동력 스포츠는 대부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패러세일링, 번지점프, 반 잠수함, 수상스키, 스쿠버 다이빙 등 리조트마다 다양한 해양스포츠 시설을 갖추고 있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피지는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이며 ‘연산호의 천국’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산호가 잘 보존돼 있다. 리조트에서 100미터만 헤엄쳐 나가도 천연 색의 살아있는 산호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만타레이, 돌고래 떼를 만나는 것도 피지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피지 여행은 먼저, 어떤 것을 보고 즐길지 목적을 정하는 게 최우선이다. 휴식, 다이빙, 낚시, 문화체험, 골프, 크루즈, 아일랜드 호핑, 프라이빗 섬 여행, 영화 촬영지 방문, 은둔 여행, 결혼식 또는 허니문 등 무엇이든 좋다. 휴양형, 혼합형, 활동형 또는 바다체험, 다문화체험, 생태관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누구와, 또는 몇 명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한국의 한 연예인이 신혼여행으로 방문해 고가 리조트에 TV도 없다며 항의한 일이 있었다. 고가의 리조트일수록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TV, 라디오는 물론 전화가 없는 곳도 있다. 허니문의 경우 젊은 미혼 남녀들이 레포츠를 즐기는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독립 부레와 해변이 있는 리조트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여행 외에도, 골프, 어학연수, 이민답사, 다이빙, 낚시, 바다 수영, 컨퍼런스 등 다양한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자료 제공 / 피지관광청>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당시, 타베우니 섬은‘2000년 새해를 맞이하는 명소’로서 유명세를 단단히 치렀다. 전세계에 단 4군데밖에 없다는, 땅 위로 날짜변경선이 지나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타베우니 섬에는 이를 기념해 하루를 가르는 표지판을 세워놓고‘어제’와 ‘오늘’을 가른다. ‘시간’을 ‘공간’화시킨 장소의 독특성 때문인지, 타베우니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들러 보는 곳이다.

타베우니 섬으로 가려면 국내선 에어퍼시픽이나 에어피지를 타야 한다. 난디국제공항과 바로 연결돼있다. 웹사이트나 랜드사를 통해 일정과 비용을 미리 체크한다. 항공권 구매는 공항에서도 가능하고, 난디에서 약 1시간 소요된다. 

그러나 시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실제로는 날짜변경선이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 모양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사실을 따져 보자면 지구상에 날짜변경선이 지나는 땅은 없다.
   
 
 망기티  로보(Lovo) 방식으로 조리한 잔치음식을 통칭하는 말로, 땅을 파고 그 속에 달군 뜨거운 돌을 넣어 만든 자연 오븐 속에 카사바, 달로와 생선,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바나나 잎으로 싸서 넣고, 그 위에 코코넛 잎과 돌, 흙을 덮어 2~3시간 동안 천천히 익혀 만든다. 코코넛 잎의 향긋함만 남아 음식이 무척 담백하다. 리조트마다 ‘로보데이’가 있어 피지 전통춤인 메케와 함께 즐긴다. 이를 통칭해 ‘로보메케’라고 부른다. 가격대는 60~120피지달러.
 
 카사바  피지인의 주식으로 생김새는 우리나라 긴 고구마와 비슷한데 맛은 고구마와 감자를 섞어 놓은 것 같다. 망기티와 함께 먹기도 하고, 일반 레스토랑에서도 먹을 수 있다. 소량의 비소 성분이 있어 날로 먹지 않으며, 끓이는 과정에서 없어지므로 삶거나 쪄서 먹는다.
 
 코콘다  신선한 생선요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이다. ‘왈루’라 불리는 성인 남자 키 만한 생선을 깍둑썰기해서 라임 주스에 담가 놓았다가 코코넛 밀크와 토마토, 양파, 매콤한 칠리 소스로 양념한 것이다. 리조트, 뷔페식당에서 맛볼 수 있고 가격은 12~18피지달러,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아 에피타이저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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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비누  피지에서 나는 야자수, 코코넛으로 만든 천연비누로 산모, 아이들에 좋고, 특히 아토피나 건성 피부에 효과가 좋다. 세정력과 보습력을 동시에 갖춰 폼 클렌징 대용으로 인기 만점이다. 잭스(Jack’s)나 나즈(Nad’s)에 다양한 모양과 종류가 있다. 가격대는 3~20피지달러.
 
▶ 전통 공예품  피지인들이 예전에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나 집기들을 장식품으로 판다. 피지인들이 직접 손으로 깎아 만들어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고급 마호가니 소재로 만든 도끼,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신성시 하는 거북이, 원주민 탈 등은 독특하고 고급스러워 진열품으로 인기가 좋다. 단, 수공예품이라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다. 물론 다양한 크기와 모양, 재질의 공예품들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가격은 300~500피지달러. 
  
 
▶ 환전  1피지달러는 약 620원. 난디공항 출국장 밖에 있는 은행을 이용하면 다른 환전소나 호텔, 리조트에서보다 환율이 유리하다. 한국에서는 피지달러로 환전할 수 없으므로 미화 또는 호주, 뉴질랜드 달러로 환전해서 재환전해야 한다.
 
▶ 시차  한국보다 3시간 빠르다. 한국이 오후 3시일 때 피지는 오후 6시다.
 
▶ 전압  우리나라 220볼트 제품 사용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콘센트가 핀 세 개짜리로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미리 어댑터를 구해 가는 것이 좋다. 호텔에서는 대부분 컨버터를 갖추고 있어 110볼트 면도기 사용에 불편은 없다.
 
▶ 여권·비자 4개월 이내 체류자는 비자가 필요 없다. 단,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입국시 심사관이 입국 신고서에서 떼어낸 파란색 종이쪽지를 여권에 넣어주는데 출국시 반드시 필요하므로 버리거나 분실하지 않도록 한다.
 
▶ 인사  영어가 공용어지만 “하이” 대신 “불라”라고 인사하고 “땡큐” 대신 “비나카”란 원주민 말로 감사의 표시를 하면 좋
다.
 
▶ 복장  여름철인 12~4월에는 면소재의 반팔이 적당하다. 겨울철인 5~11월에는 아침 저녁 약간 쌀쌀하므로 긴 팔을 한두 개 가져가면 좋다.
 
▶ 방문시기  연중 어느 때나 좋으나 5~10월 겨울철이 건기로 좋다. 다소 기온이 차지만, 강수량과 습기가 많지 않고, 특히 열대 사이클론 발생도 거의 없는 시기다.
 
▶ 예절  피지 사람들은 머리를 만지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어 금기사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애정의 표시이지만 피지에서는 이런 행위를 삼가야 한다. 또 원주민 마을이나 현지인을 방문할 때는 필히 모자를 벗고 너무 짧은 옷도 삼가야 한다. 추장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 건강  말라리아나 황열병 등 풍토병은 없다. 섬에는 모기가 있으므로 바르는 모기약을 준비해 간다. 리조트마다 모기퇴치제를 비치하고 있으므로 필요할 때 요청하면 된다. 
 
 
▶ 말라리아나일정  대한항공 직항편이 화·목·일요일에 출발하므로, 3·5· 7박 단위로 짜면 좋다. 최소 5박 이상 머물 것을 권한다. 체류 일정이 길수록 피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여행지역  피지의 관광지역은 크게 난디, 마마누다, 코럴코스트, 퍼시픽 하버와 수바, 북섬(바누아레부)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은 난디, 마마누다, 코럴코스트 등으로 난디를 중심으로 1~2시간 거리에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피지를 지역에 따라 특색 있게 즐기기 위해 퍼시픽 하버, 수바, 북섬을 찾는다.
 
▶ 숙소 예약  다양한 레저 시설을 갖춘 리조트와 잠만 자는 숙소 정도만 갖춘 호텔, 민박이 있다. 섬이 많은 특성을 살려 섬 하나를 리조트로 만든 곳이 많다. 섬 리조트로 가려면 경비행기나 헬리콥터, 범선 등을 이용해야 하는데, 예약할 때 교통편이 어떤지 꼭 체크해야 한다. 객실을 예약할 때 교통편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별도로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객실 요금에는 레포츠 이용료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도 확인할 것. 대개 스노클링이나 카약 같은 무동력들은 무료지만, 스쿠버 다이빙이나 모터보트를 이용하는 낚시 등은 유료다.
숙소를 정할 때 신혼부부처럼 외부와는 뚝 떨어져서 조용히 쉬고 싶다거나, 가족과 함께 레저와 휴식을 즐기려면 리조트로 가는 것이 좋다. 반면 관광이나 에코투어 등을 체험하고 피지인들의 생활을 보는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저렴하면서도 도심과 가까운 호텔이나 민박을 권한다. 
섬 하나가 하나의 리조트인 섬을 추천해 보면 먼저 고급 휴양형은 보모, 도코리키, 야사와, 완딩이, 터틀 아일랜드 리조트고, 다음 휴양과 활동을 겸한 혼합형은 마나리, 트레저, 캐스트어웨이, 말롤로 아일랜드 리조트 등이다. 또 활동형이라면 비치코머, 사우스시, 바운티, 마타마노아 아일랜드 리조트 등을 들 수 있다.

 

  
 
절해고도란 피지의 모누리키 섬 같은 곳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10시간을 날아 도착한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난디국제공항. 거기서 서쪽으로 차를 달려 데나라우 섬까지 간 뒤, 모터보트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을 질주해서 야누야 섬에 도착해 마을 추장에게 전통 방식으로 예를 표한 후에야 비로소 배를 돌려 그 마을 소유인 모누리키 섬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정확히 333개나 되는 피지의 섬들 중에서, 힘든 과정을 밟아서라도 하필 그 섬에 가려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무인도인 모누리키 섬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찍은 곳이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포레스트 검프’와 ‘백 투 더 퓨처’의 로버트 저메키스가 연출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캐스트 어웨이’(2000년 작)는 척 놀랜드라는 택배 기업 직원의 지난한 생존 투쟁을 그린 작품. 업무 수행 중에 비행기가 남태평양에 추락하는 바람에 무인도에서 1천500여 일을 홀로 버텨야 했던 척의 눈물 겨운 고독이 뭉클하게 펼쳐지는 드라마였다. 특히 ‘배구공 윌슨’과 우정을 나누다가 이별하게 되는 대목에서의 감동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이 영화의 명장면일 것이다.
 
피지의 무인도 모누리키 섬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지였던 모누리키 섬의 첫인상은 모래가 아주 곱고 부드럽다는 것이었다. 크지 않은 섬이었지만 잘 발달된 백사장과 속살을 고스란히 내비치듯 맑고 푸르른 바다색, 곳곳에서 눈에 띄는 색색 산호초와 원색 띠를 두른 물고기들이 낭만적 열대 섬의 풍광을 빚어내고 있었다.

백사장에 나뒹구는 코코넛을 찾아내 쪼개 목을 적시고, 준비해온 게 한 마리를 모닥불에 구워 내 생애 가장 알뜰한 한 끼 식사까지 마치자 어느새 사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원경은 제거된 채 근경만 세상의 한 중간에 동동 떠 있는 듯한 느낌. 침묵 속에 웅크리고 앉아 모닥불 주위 몇 미터만 밝혀진 상황을 돌아보고 있자니, 흡사 영화 ‘트루먼 쇼’에서처럼, 나만 알아채지 못한 채 세트 한가운데 홀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열대 섬도 밤에는 쌀쌀했다. 긴 팔 옷을 챙겨 입고 카디건까지 겹쳐 입었다. 모닥불 옆의 모래 바닥을 평평하게 고른 후 신문지를 깔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예상과 달리, 금세 잠이 쏟아졌다. 그대로 모래 속으로 몸이 빨려들 것만 같았다. 혼곤한 잠이었다. 하지만 자다가 계속 깼다. 한기와 허기 때문이었다. 밤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떨어냈다. 신문지 한 장으로 간신히 세상에 몸을 붙인 채, 필사적으로 거듭 잠을 청했다.

다가오는 새벽을 눈꺼풀로 느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닥불은 불씨로만 남아 있었다. 다섯 시 사십 분. 희뿌연 여명 속에서 어둠과 빛이 교대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을 걸었다. 바람과 파도 뿐이었다.
 
주인공 ‘척’처럼 혼자 잠들다

바람이 야자수 숲을 쓸쓸히 흔들었다. 파도가 대지를 스산하게 쓸어올렸다. 바람은 스쳐갈 때만 스스로를 알린다. 파도는 부딪칠 때만 존재 증명을 한다. 인간 역시 그럴 것이다.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에 비로소 인간(人間)이 있으니까. 모래사장에 외롭게 남겨진 내 발자국이 낯설었다.

피지에는 ‘캐스트 어웨이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고급 리조트가 늘어선 그곳은 사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와 별 관련이 없다. 실제 촬영지인 모누리키 섬이 외진 곳의 작은 무인도라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힘든 상황에서, 입지가 좋은 다른 섬이 그 이름을 차지한 경우일 것이다.

아침이 되어 남북 방향의 해변과 동서 방향의 해변이 직각으로 만나는 곳으로 갔다. 섬에서 모래사장이 가장 넓게 발달한 곳이었다. 영화 속에서 척(톰 행크스)은 이곳 모래사장 위에 나뭇가지로 ‘헬프(HELP)’라고 크게 새긴 후 구조를 기다렸다.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뭐라고 쓸까. 떠올린 두 단어 ‘만일(IF)’과 ‘기억(MEMORY)’ 중에서, 결국 기억을 택했다. 숲에 널린 코코넛 껍질들을 옮겨와 커다란 글자 모양에 맞게 하나씩 모래 위에 박았다. 한참 만에 끝내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바닥에 주저 앉았다가 그대로 누웠다. 감은 두 눈 위로 눈부신 햇살이 무감하게 쏟아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출 것만 같았다.
 
1천500여 날을 하루처럼 ‘MEMORY’

택배 회사 간부인 척은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피지의 시간은 맹렬히 달려가는 직선이 아니었다. 거대한 웅덩이 속에서 조용히 맴돌며 삭는 시간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1천500여 일을 무망히 머무르는 동안, 문명의 시간은 그를 남겨두고 쏜살같은 질주를 계속했다. 척의 불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시간 사이에 낀 자의 비극이었다. 나를 싣고 갈 배가 도착했다. 섬을 벗어나자 배는 쾌속으로 달렸다. 해변에 새긴 ‘MEMORY’란 글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기억을 남긴다는 게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멀어지는 마마누다의 섬들은 한데 모여 뚜렷하게 군도를 이뤘다. 그렇지만 그 섬 하나하나는 저마다 대양 속에 붙박혀 그 모든 파도를 영원히 홀로 견딜 것이다.  
 
<글·사진=이동진 / 영화평론가>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출처 : 종, 그 울림의 미학
글쓴이 : 하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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