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방

[스크랩] 일본 오사카

DRAGON 2010. 11. 15. 16:48

 

 

예로부터 오사카(大阪)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시코쿠(四國) 섬이 태평양의 거센 파도를 막아내는 본토(혼슈 : 本州) 남단 내해 깊숙이 자리한데다  서쪽엔 발달된 평야지대를 갖춘 천혜의 지형 덕분이었다.


5세기부터는 나니와 항을 중심으로 한반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과의 활발한 교류로 발달된 선진 문물과 지식 그리고 신흥 종교인 불교를 전래시키는 큰 역할을 해왔다.

645년 효덕 천황은 이곳으로 수도를 이전하기도 했으며, 헤이안 시대(794~1185년)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기술, 예술 그리고 여성문학(겐지모노가타리 등)과 불교가 번성해 주변에 많은 절들이 들어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거점
 

하지만 카마쿠라시대(1192~1333년)와 무로마치시대(1336~1573년)에는 내전으로 황폐화됐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지역을 장악해야 일본은 물론 전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긴 권력자들의 지배욕 때문이었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오사카 성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 이곳에 거대한 성을 쌓고 오사카를 거점으로 전국을 통일한 것으로 오늘날 오사카를 대표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에도시대(1601~1867년)에는 전국에서 모여드는 쌀을 포함한 주식과 생필품들을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내보냈기 때문에 ‘천하의 부엌’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때의 경제적 발전은 오사카의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죠루리 극장(분라쿠(文樂)의 기초), 노가쿠 극장, 가부키 극장 등에서 전통 공연예술은 물론 인재 양성의 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도쿄가 수도로 되자 오사카는 상업 도시로 변모한다. ‘동양의 맨체스터’라고도 불리면서 성장을 거듭해 일본 최대, 세계 6대 도시 안에 들만큼 발전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되고 만다.
 
전후 비즈니스 중심도시로 우뚝
 

종전 후 오사카 시민들은 긍정적인 사고와 활발한 도시 계획으로 전쟁 전의 수준을 넘는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만국박람회(엑스포 70)를 개최한 것을 비롯해 1995년 APEC 회의 등 박람회, 국제회의, 전시회와 같은 많은 국제 행사를 개최하는 통상 및 비즈니스 도시로 거듭나 명실상부한 ‘세계의 창구’로 우뚝 선 것이다.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이자 긴키(近畿) 지방을 대표하는 상업도시다. 16세기 후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킨 이후 현재까지도 일본 최대의 상업도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오사카의 관광도 이런 측면에서 쇼핑이나 쇼핑센터, 재래시장 탐방 등으로 접근해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오사카는 곳곳의 물줄기를 이용해서 도시가 형성됐다. 수상버스에서 아름다운 물의 풍경을 감상하고 오사카성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에서부터 쇼핑, 음식, 엔터테인먼트,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오사카 여행의 즐거움은 일본에서 가장 풍부한 식도락 문화와 앞서가는 패션·인테리어 감각을 두루 섭렵할 수 있으며, 전 세계의 문화와 함께 일본 고유의 멋을 간직한 우아한 전통을 체험할 수 있고, 아시아 경제의 중심지다운 활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역대 일본의 수도였던 도시들과 신흥 항구 도시들 - 고도인 교토(京都), 많은 세계유산을 간직한 나라(奈良), 세련된 항구 고베(神戶), 성을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 와카야마(和歌山), 세계유산 히메지성이 있는 히메지(姬路) -이 오사카 인근에 위치해 가능하다면 그 중심지인 교토를 기점으로 해서 간사이의 주요 지역을 돌아보는 여행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교통이 편리한 오사카에 숙박처를 정한 후 낮에는 주변 외곽 지역을, 저녁에는 오사카를 둘러보면 어떨까.
 
도심  명소 갈 땐 100엔 관광버스 이용 ‘편리’
 
오사카 시내는 교통이 편리해 간조센(環狀線)과 지하철 미도스지센(御堂筋線), 또는 요즘 새로 나온 100엔짜리 관광버스 아카버스(赤バス)를 이용하면 도심의 웬만한 명소들은 편리하게 다 돌아볼 수 있다.

먼저 방문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타쿠(北區)로 나가보자. JR 오사카역과 우메다(梅田)역이 중심인 기타는 오사카 여행의 관문으로 오사카의 가장 현대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곳이다. 대규모 쇼핑센터를 비롯해 크고 높은 빌딩들이 대도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개성 넘치는 레스토랑과 명품숍, 수입 패션 매장 등이 즐비해 유행을 앞서가는 오사카의 최신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지역과의 연결 교통편이 많아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우메다역 주변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지하상가가 있으며, 크고 작은 상점이 밀집해 있어 갖가지 물건을 살 수 있다.

다음은 각종 오락이나 음식 등 서민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신사이바시(心濟橋), 오사카 최대의 유흥가인 도톤보리(道頓堀), 난바(難波), 센니치마에(千日前) 등이 있는 미나미쿠(南區) 지역 - 흔히 미나미오사카(南大阪) 지역이라고도 부름-으로 가보자.

 

 기타쿠 쪽이 서울의 강남 청담동이라면 미나미 쪽은 강북 명동에 가깝다. 난바역에서 신사이바시역까지 남북으로 뻗은 미도스지(御堂筋)는 오사카의 가장 번화한 상점가 중의 하나다. 대형 백화점인‘다이마루(大丸)’와 ‘소고(SOGO)’가 붙어있다. 움직이는 게 다리 간판 등이 눈에 띄는 도톤보리는 에비스스지(惠比壽筋)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 음식천국 거리로 불릴 만큼 많은 음식점이 몰려 있다.


전자제품을 사려면 니혼바시 덴덴(でんでん)타운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 이곳은 우리나라 서울 용산 전자상가처럼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같은 미나미오사카 지역이라도 도톤보리를 중심으로 북쪽의 신사이바시와 남쪽의 센니치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전자가 유행에 민감한 지역이라면 후자는 오사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술집이 몰려 있는 곳으로 좀 더 서민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두 곳은 지하철을 이용, 쉽게 갈 수 있다.

세 번째는 오사카의 역사적 탐방지라 할 수 있는 텐노지(天王寺)역 주변이다. 도시의 남단에 해당하는 이 곳은 JR 오사카 간조센, 야마토지센(大和路線), 지하철 미도스지센, 다니마치센(谷町線), 긴테쓰 미나미오사카센(南大阪線)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다. 1천4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과 서민적인 향취가 짙게 배어 있는 소박한 거리의 풍경이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인데, 역 주변은 오사카에서도 가장 서민적인 곳으로 시텐노지(四天王寺), 스미요시타이샤(住吉大社) 등 오래된 사찰과 신사들이 많다. 또 서민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있는 텐노지 공원, 오사카의 상징인 쓰텐카쿠(通天閣)가 있는 신세카이(新世界) 등 명소들이 있다.

 

 

 

 

텐노지역 주변에 역사 유물·명소 많아
 
시텐노지는 서기 593년 스이코 천황(推古天皇)의 명으로 건립, 성덕태자(聖德太子)가 완공시킨 1천400년 된 고찰로 일본 최초의 관사(官寺)다. 가람은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중문·오층탑·금당·강당이 일직선을 이루는데, 이런 양식을‘시텐노지식 배치’라고 한다. 고즈넉한 본방 정원에서는 풍경을 감상하며 구수한 말차(抹茶)를 맛보는 것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좀 더 여유가 있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내 신나는 놀이권역 베이 에어리어(港灣)를 둘러보자. 이 지역은 크게 난코(南港), 텐포잔(天保山)과 홋코(北港),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지역으로 나뉘는데,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오사카돔, 세계 최대 규모의 카이유칸(海遊館) 수족관 등 새로운 명소들이 끊임없이 들어서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은 아지가와(安治川)를 가운데 두고 텐포잔과 마주보고 있는데, 무료 연락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텐포잔~난코 구간은 초현대적 OTS센 지하철로 연결된다. 여유 많은 시민들은 주로 저녁 시간에 많이 찾는다.

 

 

 

일본에서도 지방마다 독특한 사투리를 쓴다. 오사카 사투리는 오사카벤이라고 부르며 간사이지역에서만 사용되는데, 표준어와 비교해 단어는 물론 액센트가 다른 부분이 많다.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을 배워뒀다 여행 중 사용하면 오사카 주민들이 놀라는 눈빛으로 다시 쳐다볼 것이다.

▶ 오오키니(おおきに)  “감사합니다”라는 뜻. 표준어로는“아리가토 고자이마스”지만 오사카 사람들은 보통 대화 끝에 “오오키니”라고 한다. 

▶ 마이도(まいど)  상인들이 잘 쓰는 말로 “매번(まいど) 감사합니다”를 줄인 말. 아침, 낮, 밤 없이 쓰는 친밀감과 애교를 담은 인사말이다.

▶ 고레 난보(これ なんぼ)  “이거 얼마입니까?”라고 물건 살 때 묻는 말이다. 가게에서 가격 흥정을 시작하는 계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 벤쿄 시테(勉强して)  “깎아주세요”라고 흥정하며 하는 말.

▶ 보치보치(ぼちぼち)  오사카 상인들의 공통적인 인사는 “모우카리마카(もうかりまっか: 장사 잘되나요?)이다. 그럴 때 하는 답이 “보치보치덴나(ぼちぼちでんな: 그럭저럭)”이다. 

 

 

 ▶ 타코야키  타코는 문어, 야키는 구이. 바삭바삭한 겉과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속살에 굵은 문어다리 한 조각을 품고 있다. 달군 철판에 반죽을 붓고 쇠꼬챙이로 돌려가며 익힌다.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 40년 전통 ‘타코마사’ 도톤보리 본점에서는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가격은 720엔.

 

▶ 이카야키  전용 기기에 압축한 오징어를 밀가루 반죽에 넣어서 구운 것으로, 오사카에서 처음 개발됐다. 즉석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고  출출할 때 스낵처럼 간식으로 많이 먹는다. 40년이 넘은 전통을 자랑하는 ‘한신 명물점’이 유명하다. 가격은 120엔.

 

▶ 오코노미야키  밀가루를 푼 물에 돼지고기, 양배추, 달걀, 새우, 오징어 등 좋아하는 재료를 넣고 뜨거운 철판에 부쳐 먹는 우리의 부침개 같은 음식. 고명과 반죽, 재료와 소스에 따라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50년 전통 ‘미후네’에서는 손님이 직접 부쳐 먹을 수도 있다.

                        가격은 800엔.


▶ 우동  오사카에 가서 안 먹어 보면 손해라 할 만큼 유명한 음식. 쫄깃한 면발, 산뜻한 국물, 다양한 고명으로 맛을 가른다. 오사카의 3대 우동집은 사누키 우동의 ‘가와후쿠 본점’, 기츠네 우동의 ‘마쓰바냐’와 ‘이마이’다. 가격은 각각 1천200엔, 550(750)엔, 700엔이다.

 

 

  

▶ 오사카 하리코  안이 비어있는 입체로 된 종이 모형으로 400년 역사를 지닌 공예품. 일본 전통지 와시를 수십 장 겹쳐, 물에 적셔 목재 틀 둘레에 붙여 건조시켜 중앙의 목재틀을 뺀 후 착색한다. 호랑이와 다루마(오뚝이), 탈 등이 있고, 그 중에서 호랑이는 마귀를 쫓고 길조를 상징한다 해서 인기가 있다. 오사카성 천수각 1층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텐카토이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돼‘텐카토이츠(천하통일)’로 이름 붙여진 오사카성의 술. 귀한 양조용 현미 ‘오마치’만으로 빚은 술을 병에 넣어 지하 저온 저장고에서 숙성시킨다. 야마토코료구라에서 양조된 명주는 고급스런 향과 약간 쌉쌀하면서 톡 쏘는 맛이 있다. 역시 오사카성 천수각 뮤지엄 숍에서 1천800엔(720밀리리터)에 구입할 수 있다.

 

▶ 톤보다마  고대 메소포타미아 귀족들이 장식하던 유리구슬이다. 실크로드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지만 그 정통 기법이 오사카에서 재현됐다. 수작업으로 만들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독특한 색채가 매력. 역시 천수각 뮤지엄 숍에서 살 수 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을 만들어 준 밑거름은 여행과 책이었다. 20대였던 1960년대 10년간 그는 누군가의 밑에서 수련을 받지도 않았고, 의견을 나눌 동급생도 없었고, 지도해줄 선배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도권하의 정리된 과정을 겪는 대신 철저히 스스로 찾아나서는 과정을 겪게 된다.


특정한 집단이나 공간에 자신을 한정시키지 않고, 자기 앞에 주어진 시간을 책을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의 생각과 철학을 접하는데 사용하며,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행을 통하여 그의 건축관을 만들어 나갔다. 조모를 부양하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야 했던 그는 한밤중이나 긴 여행 중 열차나 배로 이동하는 도중에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으며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계기를 갖게 됐다고 그의 자전적 저서‘연전연패(우동선 옮김, 까치, 2004)’에 밝히고 있다.

그는 또 1965~1969년 세계의 중요한 건축을 돌아보며 잡지나 미디어를 통해서 보았던 서양의 건축을 직접 접하고는“실제로 건축 공간을 체험하는 일은 건축가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이다.건축이란 머리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이 아니다. 건축에 관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히 여행하는 것과 같다”며 여행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건축에의 관여는 영원한 여행”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성찰할 수 있고, 깊이 사색할 수 있을 때는 고독에 몸을 맡긴 때입니다… 낯선 땅을 방황할 때에는 기대감과 함께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함에 몸을 움츠렸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독함에 시달리며,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방황하고 망연자실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활로를 찾아내어 어떻게든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여행을 하고 있으면 인간은 생각하게 됩니다. 그 생각(사고)은 고독 때문에 더욱 깊어지고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즐거운 여행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만, 자기 속에 남아 살아가는 힘의 양식이 된 것은 오히려 이와 같이 험난한 시간 속에서 얻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여행이란 단지 신체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한 자아의 발견 과정이었습니다. … 건축사에 등장하는 뛰어난 건축가들은 모두 젊을 때에 이러한 여행을 했습니다. 대부분 이 여행 과정에서의 발견과 사고의 시간이 그 후 건축가로서의 전개와 삶의 방식에 깊이 관련됩니다.” (연전연패 192~193쪽)
 
장소와 환경의 가치를 찾아서
 
오사카에는 젊은 날의 그랜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1969년 안도 타다오 연구소를 설립한 후 스스로 구축한 건축 언어를 현실화시킨 40여 개의 작품들이 있다. 1973년 토시마하우스(富島邸), 1976년 스미요시노나가야(住吉の長屋)를 시작으로 그의 건축 언어는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1988년 갤러리아 아카(Galleria Akka)를 비롯해 1989년 빛의 교회(光の敎會)를 거치며 그의 건축은 더욱 빛을 발하며 오사카 인근을 장식하고 있다.

시대를 지나며 더욱 성숙해진 그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고 예일대(1987년), 컬럼비아대(1988년)를 거쳐 1990년 하버드대 객원교수, 1997년 동경대 교수로 취임해 2003년 퇴임할 때까지 그의 건축관은 고도로 세련돼 더욱 공고해지게 된다.

그의 여러 작품 중 요즈음 새롭게 주목을 받는 것은 아와지시마(淡路島)의‘유메부타이(夢舞台)’와 나오시마(直島)의‘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을 들 수 있다. 오사카 근교에 자리 잡아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난 섬에 위치한 이곳은 개발에 의해 훼손된 환경을 살리며 장소를 재활시킨 건축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장소 특정적 예술(Site Specific Art)’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접근은 그의 건축이 단일 건축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이제 장소와 환경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건축관으로 옮겨 갔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풍광과 함께, 도심의 피로에 물든 탐방객을 휴식을 넘어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글·사진=박경립 / 강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안도 타다오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고 스위스 르가노에 ‘마리오 보타’가 있다면 일본 오사카에는‘안도 타다오’가 있다. 한 지역이나 도시가 그의 이름을 대변할 건축가를 갖는다는 것은 건축가에게나 도시에게나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도 타다오는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며 건축가로 성장했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배우지 않은 사람 중 가장 성공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는 상아탑에서 잘 정제된 알약을 먹는 대신 스스로 찾아가며 자신의 건축을 일구었다.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출처 : 종, 그 울림의 미학
글쓴이 : 하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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