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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상하이

DRAGON 2010. 11. 15. 15:57

 
  
 
‘중국 근대 100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하이는 1900년대 전후 중국 역사의 중심지였다.

비옥한 장강(揚子江) 하류에 위치, 송대 말에 상하이 진(鎭)이 형성됐고, 1292년 상하이 현(縣)이 됐다. 명대에는 왜구에 대항하기 위해 성을 쌓았고, 난징(南京)지구 쑹장(松江)부 관할로 전국에서 가장 큰 면방(綿紡)의 중심지였다.

상하이는 1843년 중국의 5개 대외 무역항 중 하나로 개항되는데, 이는 중국과 영국 사이에 체결된 난징조약에 따른 조치였다. 이때 유입된 영국과 미국 등 세계 열강들의 문화와 이들의 조계지로서 발전하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뉴욕과 런던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금융 중심지이자 극동의 최대 상업도시로 급성장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동양의 여왕’, ‘동쪽의 파리’다.

1949년 공산국가가 되며 직할시가 되고, 거대한 산업도시로 변모하지만 국가 체제상 여러 문제와 외국인 투자의 중단 때문에 침체 또는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92년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과 개방 정책에 힘입어 상하이는 재개발에 박차를 가해, 지금은 인근의 초기 발전 도시 선전과 화남경제권 광저우(廣州)를 능가하며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상하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번잡한 항구 중 하나로 이미 2005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화물 항구가 됐다. 또 급격한 현대화 속에서도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상업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도 발전하고 있다.

현대적 상하이는 다양한 건축양식의 마천루 도시다. 황푸강변에 위치한 와이탄에는 20세기 초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HSBC 빌딩에서부터 첨탑 형식의 싸순맨션(현 화평반점) 등 각양각색의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고 황푸강 건너에는 상하이의 상징 둥팡밍주(東方明珠)가 자리잡고 있다. 작년 9월 완공된 101층 높이의 상하이 세계금융센터는 중국에서는 가장 높고 세계에선 세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또 인민광장의 상하이박물관과 상하이대극원 등도 최근 건설된 독특한 마천루로 시선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재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전통적인 강남 양식의 정원인 위위엔(豫園)을 포함해 근교에 주지아지아오(朱家角), 시탕(西塘) 등 옛 건물도 잘 보호하고 있어 현대 속의 중국 정통 고전을 맛볼 수도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올 5월 1일부터 10 월 31일 상하이에서 엑스포를 개최, 중국 대표 양대 도시를 통한 국력 신장을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유동인구 포함, 인구 2천여만 명의 세계 최대 도시 상하이는 이래서 올해 더욱 한번쯤 찾아봄직한 도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상하이는 크게 도심의 현대문화와 중국 전통문화라는 상반된 재미를 한번에 제공하는 매력을 가진 매우 유혹적인 도시다.

상하이의 대표 쇼핑거리로는 상하이의 명동이라 불리는 난징루(南京路)와 화이하이루(淮海路), 쉬지아후이(徐家)를 든다. 난징루는 동쪽의 와이탄에서부터 서쪽 연안시로에 이르기까지 상하이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 5.5킬로미터의 대로다. 난징루 번화가에는 유명 브랜드 매장이 600여 곳이나 입점해 있고 하루 평균 170만 명의 유동 인구들로 넘쳐난다.

화이하이루는 100년 전 프랑스 조계지로, 오늘날 고층빌딩과 고급 백화점들이 즐비한 번화가로 변모했다. 세계 명품 전문매장이 들어선 타임 스퀘어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자라(ZARA) 매장도 볼 수 있다.

또 상하이 남서부 쉬후이취 중심부에 위치한 쉬지아후이는 유럽풍 거리 헝산루(衡山路)에 인접한 상업 중심지역. 전자상가와 영화관, 건자재 가구 전문매장 이케아(IKEA) 및 대형 쇼핑센터가 많아 젊은이들의 쇼핑천국이기도 하다.

도심의 복잡함을 벗어나 여유를 찾고 싶다면 ‘아Q정전’으로 유명한 루쉰의 묘와 기념관이 위치한 루쉰공원(魯迅公園)으로 이동해보는 것도 좋다. 특별히 우리에게는 윤봉길 의사의 항일 의거현장으로 더 유명한 이곳에는 윤 의사의 의거를 기념해 세워진 기념관 매정(梅亭)이 있다. 공원 곳곳에는 노래하며 춤추고, 장기를 두며 소일하는 중국인들이 많은데 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밖에도 현대 중국의 산파라 할 수 있는 모택동, 삼민주의를 제창하며 중국 혁명을 이끌었던 중산 쑨원, 국공합작을 이뤄낸 쑨원의 아내 쑹칭린,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루쉰 등 중국 독립과 근대화 운동을 펼친 지식인들의 생가가 모두 이 곳 상하이에 위치해 있다.

상하이에서 중국 전통문화의 향취에 빠지려면 위위엔과 위위엔 주변의 옛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명나라의 관료 판원당(潘允端)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1559년 착공해 18년 만에 완공한 정원 위위엔(豫園)은 당시 황제만 쓸 수 있었던 용문양을 조각하면서 용의 발가락을 세 개로 만들어 역적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크고 작은 골목길로 연결된 정원 안은 마치 미로 속을 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들로 꾸민 건축물에 감탄하며 들어서다 보면 선물 상자를 열어 뜻밖의 선물을 발견하는 듯한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꼭 찾아가봐야 할 곳이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다. 임시정부청사는 원래 시내 여러 곳에 산재했으나, 현재 방문하는 마당로(馬堂路) 지하철 1호선 황피남로(黃陂南路)역 남쪽에 있는 곳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번화가인 화이하이루와 인접한 임시정부청사에 들어서면 당시 국권 회복을 위해 외국에서 애쓰던 선열들의 애국심이 전해지며 절로 숙연해진다.
 
 
 
엑스포 주최측이 공식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엑스포 기간 중 펼쳐질 각종 문화 행사는 총 807개로, 공연만 1만7천288회나 된다. 이 중 상하이엑스포 주최측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24개로 1만1천621회고, 엑스포 참가국이 선보이는 프로그램은 783개로 5천667회에 걸쳐 이국적인 문화공연을 볼 수 있다. 이는 184일 엑스포 기간 중 매일 평균 94회에 달하는 공연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엑스포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며 인기 공연이나 인기 전시관의 참관을 원할 경우에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낮에는 관람객들이 많으므로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멋진 공연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야간을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흡연구역을 제외한 모든 곳이 금연구역.

공연 정보는 상하이엑스포 웹사이트, 엑스포전시관 내부 및 행사장 배포 팸플릿 또는 LCD 영상, 외부 판매 ‘2010년 상하이엑스포 문화공연행사 프로그램 안내’, 상하이엑스포 문의전화 962010,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신문, TV 보도매체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중국영화 마니아라면 꼭 가야할 곳
 
 영화낙원(影視樂園)  1930년대 근대 상하이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영화 세트장. 30년대 남경로 옛 상하이 가옥 등 실제 건축물이 완벽하게 재현돼 있다. 근대 상하이 시가지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당시와 똑같은 마차와 전차는 직접 타 볼 수도 있다.
 
중국 고전 소설을 재현한 곳
 
 대관원(大觀園)  수려한 경치를 가진 정산호 주변에 중국 고전 소설인 홍루몽에 나오는 대관원을 재현한 곳이다. 대관원 동남쪽에 있는 7층으로 된 청운탑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곳은 여행객들에게는 5층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대관원의 정교한 설계와 미묘한 건축 예술은 중국 고전 정원 건축의 집대성이라 불린다.
 
 
 
문화거리  상하이는 특색 있는 문화 거리가 여럿 있다. 크고 작은 갤러리들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한자리에 자리잡은 모간살루 M50과 예술가들의 화랑과 소극장들이 들어선 통러팡, 골동품거리 타이캉루, 출판사와 북카페가 들어선 사색의 거리 샤오싱루, 고서적 책방이 많은 복주로 등 특화된 거리가 즐비하다.

쇼핑가  코리아 타운이라 불리는 우중루와 밀접한 통양쇼핑센터와 홍매이루 진주청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일명 ‘짝퉁’ 상품이 집중된 상가다. 의류, 신발, 골프용품, 골동품 등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판매하고 있으나 가격 결정까지 여러 차례 조정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서커스 공연  서커스는 중국어로 ‘짜지’ 혹은 ‘마시’라고 한다. 상하이에서는 상하이 마시청, 상하이 상성극원, 운봉극원 세 곳이 가장 대표적인 서커스 공연장이다. 각자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상설 공연을 하고 있으며 가격은 위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보통 80원에서 150원 사이다. 공연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숙박  엑스포 개막이 시작된 5월과 방학 기간인 7~8월, 국경절 연휴와 폐막식이 있는 10월을 피해 6월과 9월에 엑스포전시관을 찾는 것이 좋다. 특색 호텔 혹은 아파트형 호텔은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고려할 만하다. 엑스포를 겨냥해 운영하는‘엑스포농가’ 등도 좋은 선택이다. 또한 상하이에는 한국인 민박집이 발달해 있는데 미리 부탁하면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기도 한다.

교통  상하이의 지하철은 모두 11개 호선으로 상하이 전역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엄청나게 붐비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가장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은 택시다. 기본요금은 12위안이며 기본 3킬로미터 이후 매 킬로미터마다 2.4위안씩 올라간다. 주요 관광지가 아니라면 목적지 거리 이름을 말하거나 한자로 적어주면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택시 중 하늘색의 ‘대중(大衆)’ 택시가 가장 좋은 서비스로 정평이 나있고 기사 오른편에 별을 표시해 서비스 정도를 나타낸다. 시내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은 늘 막히니 가깝다고 방심하지 말고 반드시 일찍 출발해야 한다. 지하철 2호선 롱양루역에서 푸둥공항까지는 자기부상열차를 운행하고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따자시에(大閘蟹)  음력 9~10월 쑤저우의 양청호에서 나는 민물 게. 9월이면 암컷의 배에 알이 가득 차서 영양도 만점, 맛도 만점이고 10월이 되면 수컷이 살이 통통하게 오르면서 맛이 일품이다. 게 자체의 원래 맛을 살려 찜으로 먹는 것이 보편적이나 먹기 좋게 게살만 발라 요리한 시에펀이나 수프로 먹기도 한다. 복주로에 위치한 100년 전통의 왕바오허지우지아(王寶和酒家)가 유명하다.

 상하이 시아오롱바오(上海小籠包)  손으로 빚은 투명하고 얇은 피와 입안 가득 터지는 육즙이 맛을 결정짓는다. 겉모양은 마치 잘 빚어놓은 찐빵 같은데 속은 고기 만두 같은 맛이다. 육즙이 흘러내리니 입안이 데지 않게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싱가포르, 일본 등 13개 국가에 20여 개 해외매장을 가진 난시앙만두점 본점이 위위엔에 있다.

 요우바오허샤(油爆河蝦)  상하이와 장쑤성, 저장성 일대의 대표 요리. 민물새우는 단백질, 칼슘 함유량이 풍부해 영양가가 높으며, 특히 늦은 봄, 초여름에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맛이 가장 좋다. 민물새우를 기름에 튀겨 그다지 느끼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상하이 100년 전통 레스토랑 싱화로와 라오정싱에서 그 본연의 맛을 제일 잘 재현하고 있다. 현대식 퓨전 맛을 좋아한다면 인민광장에 위치한 ARK도 가볼 만하다.
    
 
 
 
 차  상하이는 차의 최고 소비지이자 전국 최대 수출항이라 전역에서 나는 좋은 차들이 모인다. 티엔산루에 위치한 티엔산차성, 지아베이취의 따닝국제차성 등에서 항저우의 용정차와 같은 쑤저우 절강지역의 녹차 중심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또 무료시음 서비스를 제공하니 먼저 마셔보는 것이 필수.

 도자기  중국 하면 도자기, 특히 명·청대 것이 유명하지만 비싸고 귀한 옛날 자기보다 최근 생활 자기가 품질이나 디자인, 용도, 경제적인 면 등에서 훨씬 유리하다. 신티엔디에 위치한 심플리 타이에 가면 구입하기 쉽다. 윤기가 너무 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각각 정치와 경제 중심지로서 중국을 대표한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과 비중이 있지만, 문화예술 방면에서는 유독 상하이가 베이징에 비해 노출의 빈도가 적다. 상하이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억울한 점이지만 베이징 하면 이른바 ‘징파이(京派)’라 부르는 문화와 경극을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인이 떠오르지만 상하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상하이가 그 통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상하이에는 상업도시로 많은 인구가 유입됐고, 결국에는 전국 최대의 경제중심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여러 도시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독특한 지역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 때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상하이에서 형성된 이 문화 예술 유파는 ‘하이파이(海派)’라는 이름을 얻는다. 바로 중국의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징파이, 즉 베이징 문화에 대비되는 현상이라 할까.
 
베이징 ‘징파이’는 중국 전통문화 대표

일찍이 ‘하이파이’는 회화와 희극에 나타난 예술적 특징을 가리켰다. 그래서 1937년에 출판된 ‘중국회화사’에서는 상업화와 더불어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화풍이 점점 ‘속탁(俗濁 : 도시적이고 상업적인 특징)’해졌는데, 이를 ‘하이파이’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경극(京劇)은 베이징에서 기원한 중국의 ‘국수(國粹)’다. 경극이 상하이에서 새로운 ‘하이파이’스타일을 형성함으로써 베이징의 ‘징파이(京派)’와 두 갈래 파벌을 형성했다. 상하이 스타일의 경극은 오랜 전통과 레퍼토리를 보존하고 그 기초 위에 공연형식을 새롭게 창조한 형태이다.

하지만 훗날 그 의미가 확대돼 도시문화와 상업적인 색채를 띠는 문학 유파를 ‘하이파이’라고도 했으며, 심지어는 해외에서 돌아와 외국기업의 대표 혹은 간부로 활동하는 유학파들도 ‘하이파이’라 불렀다. 어쩌면,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 권부의 실세로 등장한 장쩌민, 주룽지, 우방궈 등 상하이 출신을 ‘상하이방’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관련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유파를 이끄는 핵심적인 인물은 여전히 화가들이었다. 장밍커는 ‘한송각담예쇄록’에서 1900년 전후의 상황을 “해상무역 금지조치가 풀리자 상하이 곳곳에는 무역이 흥성했다. 그러자 그림을 생계로 유지하는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몰려와 그림을 파는 화가들과 그림을 사려는 수집가들로 거대한 그림 시장이 형성됐다”고 표현했다. ‘상하이모린(海上墨林)’에 따르면 이때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화가만도 무려 700여 명이 넘는다.
 
외국 문화 수용, 독특하게 핀 ‘하이파이’

하이파이의 화풍은 전통 문인화를 기초로 민간 미술과 금석 예술을 혼합해 대중들이 좋아하는 제재와 ‘대사의수묵화(화가의 사상과 감정을 수묵화의 기법을 활용해 표현하는 그림)’기법을 활용해서 강렬한 색채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문인화보다는 대중들의 심미감을 자극하는 좀 더 상업화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창숴(吳昌碩)의 ‘도실도(桃實圖)’와 푸화(蒲華)의 ‘천축수선도(天竺水仙圖)’를 들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이후는 중국의 계층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예전에는 문인계층이 사대부로서, 또는 지주 또는 관리들이 지배계층을 형성했지만, 19세기 중엽부터는 상업 무역이 발달해 상업자본을 형성했던 매판(買辦)들이 신진세력으로 부각됐다. 예술시장도 전에는 주로 문인들이 화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거나 소장했지만, 구매자와 수집가의 역할을 매판들이 하게 됐다. 이들은 상업자본으로 기존 문인 계층들이 누리던 예술품 감상이라는 문화활동을 유지함으로써 신분상승을 맛보았고, 예술품에 대한 구매와 수집활동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예술시장을 형성하게 했다.

당시 화가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사들이는 화점을 ‘산젠좡(扇箋莊)’이라고 불렀다. 비록 근대적 화점은 아니었지만 이와 유사한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중국 근현대 예술시장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산젠좡의 주인은 중개인의 역할을 했으며, 화가들에게 숙식도 제공했다. 산젠좡의 출현으로 화가들은 숙식 문제를 해결하고, 구매자와 가격을 흥정해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산젠좡 주인은 관리와 귀족들을 대신해 그림을 수집했으며, 화가들이 이름을 날리도록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요즘으로 치면, 매니지먼트나 후원자(Patronage)의 역할을 한 셈이다.

‘천축수선도’를 그린 푸화의 경우,‘희홍당산젠좡’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하이파이 중에서 명성이 가장 높았던 런바이녠은 1868년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 그림 값이 높지 않아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는데 상하이 화단의 후공서우(胡公壽)의 소개로 ‘고향실산젠좡’의 화구와 숙식을 제공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타이캉루, 똥타이루 현대 산젠좡 역할 

이처럼 상하이에 생겨난 산젠좡은 화가들에게는 창작 활동의 공간으로, 구매자들에게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예술시장의 역할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860~1870년대 골동품 산젠좡이 10개이던 것이 광서(1875~1908) 연간에는 20여 개로 늘어났다. 1909년의 통계에 따르면, 화점만도 109개나 됐으며, 최초로 설립된 산젠좡인 만운각을 비롯해 고향실, 청련실, 여화실, 희홍당, 득월루, 금윤당, 비운각, 노동춘 등 여러 산젠좡이 있었다.

현재 상하이에는 산젠좡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1998년 겨울에 개장된 상하이의 예술의 거리라고 하는 타이캉루(泰康路)와 198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상하이의 인사동이라고 할 수 있는 똥타이루(東台路)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똥타이루를 베이징의 골동품 거리 유리창(琉璃場)의 이름을 빌려 ‘상하이 유리창’이라고 부른다.
 
<조은상 / 배재대학교 교수, 중국문학>
 
출처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이메일 100501 현재
출처 : 종, 그 울림의 미학
글쓴이 : 하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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