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수도 앙카라보다 더 유명하고 대표성을 띠는 이스탄불은 전세계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신비한 매력을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다.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이어져온 2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이스탄불은 이미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고, 2010년 ‘유럽문화수도’로서 다양한 예술문화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3천50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가 1천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뉜다. 역사적으로는 우리가 비잔틴 제국이라 부르는 동로마에 이어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이스탄불은 1천600여 년 간 양대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전역에서 오랜 도시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 경계로 아시아와 유럽
이스탄불은 탁심 광장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주요 고대 건축물은 히포드롬과 술탄아흐멧 사원이 있는 비잔틴 시대의 구도시에 집중돼 있다.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진 술탄아흐멧 사원을 비롯, 쉴레이만 사원 등 2대 이슬람 사원, 예니성당, 성 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 고고학박물관, 지하 저수지인 예레바탄 사라이 등을 걸어 다니면서 둘러볼 수 있다. 오스만 제국 말기에 세워진 돌마바흐체 궁전, 일드즈 궁전과 루멜리 성은 보스포루스 연안에 있으므로 한번에 둘러보기 좋다.
또한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에서 지붕을 가진 시장 중 가장 거대한 곳으로 터키의 특산물인 화려한 색상과 문양의 양탄자를 비롯해 금과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등의 보석과 가죽제품, 골동품, 시계, 의류, 물 담배용 파이프 등 수천 가지의 상품을 만날 수 있다.
좀더 서민적인 시장 이집션 바자르는 옛날 이집트에서 보내온 공물 중 특히 향신료를 주로 거래하던 곳. 가게 앞에 늘어놓은 선명한 색상의 수많은 향신료들이 재미있다. 일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서는데 이스탄불의 보따리 장사꾼은 죄다 모인 듯 진풍경을 자아낸다.
탁심 광장 경계로 신·구시가지 나눠져
이스탄불에 왔다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오가는 보스포루스 해협 선상 투어는 필수.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왕복 1시간 30분부터 6시간짜리까지 다양한 코스가 준비돼 있다.
또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자 전철이면서 최단 거리를 왕복하는 명물 전차도 있다. 갈라타 타워 근교의 투넬 스퀘어와 카라쿄이 사이만 운행하는데 19세기 밀레트 제도 아래 통상에 종사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출퇴근을 위해서 만든 것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이스탄불 관광은 구시가지, 그 중에서도 성소피아 성당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물로서 동서교역의 중심지로 기독교 제국과 이슬람 제국의 천년 수도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537년 축성된 성 소피아 성당은 근 1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사용돼 오다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족의 군주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점령하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부터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됐다. 이때 석회로 덧칠된 비잔틴 모자이크와 벽화들은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인 무스타파 케말의 대규모 복구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 본색을 되찾았다.
현재 박물관인 성당 내부는 초기 비잔틴 시대의 성당 양식과 중기 이슬람 모스크 양식이 혼합돼 신비하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1천 년 동안 켜켜이 쌓인 여러 가지 재미난 일화까지 알고 둘러보면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바로 그 맞은편에는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건축물인 술탄아흐멧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거대한 크기와 높이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1616년 건립된 이슬람 성전인 술탄아흐멧은 터키인들이 성지와 같이 여기는 곳으로 모스크 내부의 벽과 기둥이 99가지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돼 ‘블루모스크’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돔에 나있는 200개가 넘는 창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햇살이 비치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표 건물 성 소피아 성당 ‘압권’
강력한 오스만 제국을 상징하는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술탄이 머물던 곳으로, 그 시대 절대 권력을 지닌 역대 술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궁전 전체 면적은 약 70만 평방미터(21만 평). 바티칸시국의 2배이며 모나코의 절반 정도 되는 규모다.
지금은 대부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교역의 요충지를 꿰차고 상업국가로 번성을 누리던 ‘술탄의 시대’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다. 술탄이 살던 궁정도 이 화려한 궁전 안에 있었다. 궁전 안의 보석 및 다양한 수집품을 살펴보면 술탄 휘하의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화려했고 번성을 누렸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톱카프 궁전 안에는 헬레니즘 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까지의 조각과 석상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5대 고고학박물관에 속하는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원전 305년경에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을 보고 싶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술탄아흐멧, 예레바탄 사라이
술탄아흐멧 사원 정면에 있는 히포드롬 광장은 비잔틴 시대 전차 경주의 무대이자 생활의 중심지였다. 10만 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는 이곳은 후에 시민들이 모여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정치적 의견을 논하기도 한 비잔틴 시민활동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잘 꾸며 놓아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히포드롬 광장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대리석 위에 지은 오벨리스크 탑이 있다. 본래 오벨리스크 대리석 받침대에는 전차 경기를 지켜보는 황제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지금은 많이 닳아 원형경기장 모습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 때에 만들어진 지하 물 저장고도 매우 인상적인 명소다. 비잔틴 제국 때 도시의 여러 군데에 비상용 식수를 보관하기 위한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바실리카 저수지(현재 예레바탄 사라이)가 가장 최대 규모다. 길이 143미터, 너비 65미터의 이 거대한 지하 저수조는 총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으며 주변 기둥의 모양과 굵기가 다 제각각이다. 저수지 북서쪽에는 두 개의 메두사 머리가 거꾸로 세워져 있어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007시리즈’영화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히포드롬 광장까지 한 구역에
이스탄불에는 옛 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니아 투르크는 2003년에 지어져 최근 관광객들에게 새롭게 떠오르는 미니어처 테마파크인데, 터키 전역의 유명 건축물, 유적을 축소·전시해 놓은 곳으로 터키를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미리 터키의 다양한 곳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스토리랜드에 들어서면, 각각의 미니어처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음성정보 서비스가 제공돼 여행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한켠에는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으므로 잠시 쉬어가도 좋다.
탁심 광장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스탄불의 젊은 열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이스탄불의 명동, 탁심-하르비예 지역에는 식사가 가능한 바가 즐비하다. 터키 음악부터 밸리 댄스까지 화려한 볼거리가 펼쳐지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클럽이나 재즈바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탁심 이스틱크랄 거리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빨간 꼬마 전차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직접 승차도 가능하다.
<자료 협조=터키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장기 두는 사람과 사색가의 우유’라고 알려진 터키 커피는 초기에는 술탄 같은 부유층이 즐겼다. 그러다가 점차 커피 애호가의 수가 증가하고 향유층도 다양해져 일반 서민들에게 퍼졌다. 터키에서는 알 커피를 미세한 분말로 갈아 ‘제즈베’라는 커피용 주전자에 끓여서 작은 커피잔에 마시는 게 보통이다.
마신 후에 커피 점을 치는 이색 경험도 하나의 즐거움. 다 마신 커피잔을 커피잔 받침에 엎어놓고, 남은 앙금을 커피 받침대에 쏟는다. 여기서 남은 커피의 모양을 가지고 점을 치는데 앙금이 컵에 남아 있지 않으면 그날의 운세가 매우 좋다고 한다.
▶ 교통 이스탄불에서 앙카라 등 국내 20여 개 지역으로 터키 국내 항공편 매일 운항. 장거리 버스노선도 잘 발달돼 있어 오토갈이라 부르는 버스터미널에 가면 각지로 이동하는 여러 등급의 버스를 쉽게 탈 수 있다.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내에서는 전철이 운행된다. 보통 버스에서는 안내 승무원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 금연 음식점, 커피숍,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실내 공공장소도 금연. 담뱃갑이나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다가 적발될 때도 20리라(한화 약 1만 6천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 환율과 물가 화폐 단위는 터키리라(TL), 1TL는 0.48유로, 0.63 USD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전이 안 되므로 달러나 유로를 준비해야 한다. 현지에 은행이나 환전소는 물론 ATM 기기가 잘 보급돼 있다. 상점 등에서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있으므로 요주의.
▶ 식수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 식수로 부적합하므로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이 좋다.
▶ 사원 방문 이슬람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다. 노출이 심한 옷도 입지 말도록 하자.
▶ 치안 관광객들이 술집 호객꾼을 따라 갔다가 약물을 탄 음료수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귀중품을 빼앗기는 사례가 간혹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 팁 문화 일반화돼 있으므로 택시,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소비 가격의 10퍼센트 정도를 주면 된다.
▶ 기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는 선물할 때도 주의해야 하는데, 배낭여행객들이 흔히 소품으로 선물하는 돼지 모양도 주의 대상이다.
▶ 고등어케밥 보스포루스 해협을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기 전 에미노뉴 선착장에서 먹는 고등어케밥은 케밥의 천국 터키, 이스탄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 중의 별미다. 뼈를 발라낸 고등어에 레몬즙을 뿌려 양파, 토마토, 피망 등을 빵 사이에 끼운 간단한 요리지만 바다 냄새가 더해져 더 매력적이다.
▶ 바클라바와 로쿰 터키식 디저트로 바클라바는 버터를 바른 종이처럼 얇은 패스트리 반죽을 시럽에 절여 견과류 등을 뿌린 달콤한 파이식 과자다. 터키 내에서는 선물용으로도 많이 주고받는다. 로쿰은 터키식 젤리로 아주 고소하고 달다. 전분과 설탕가루에 과일이나 너트를 넣고 피스타치오, 장미 오일 등을 첨가해 맛과 향을 더한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기도 한다.
▶ 피데 터키식 피자로 빵을 몇 겹으로 겹쳐 굽는다. 토핑에 따라 치즈 피데, 해산물 피데, 쇠고기 피데, 양송이 피데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탈리아식 피자보다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흑해 지방에서는 달걀을 반죽 위에 덧칠하는데 화덕에 구워내는 걸 보면서 먹으면 눈과 입이 더욱 즐겁다.
▶ 나자르 본죽(악마의 눈) 파란색 원형 안에 검은 눈동자가 있는 듯한 형상의 유리 구슬이다. 무서운 악마의 눈빛이 또 다른 악귀들을 물리쳐 준다는 의미로 집안 곳곳, 길거리의 상점, 버스와 승용차 등은 물론 갓난아이의 옷깃에 작은 것을 달아 놓고 좋은 기운이 깃들길 빌기도 한다. 요즘은 핸드폰 줄, 열쇠고리, 액세서리 등 디자인도 다양타.
▶ 카펫 유목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터키의 카펫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2중 매듭이라는 점이 특히 손꼽힌다. 고가의 제품이지만 그만큼 세밀하고 촘촘하며 단단하기까지 하다. 이스탄불 대형시장에 가면 화려하게 수놓인 카펫을 구입할 수 있다.
▶ 도자기 이즈닉 타일은 푸른색과 흰색의 조화가 특징으로 블루모스크뿐만 아니라 이슬람박물관, 고고학박물관 등 실내 장식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현재는 수공예품이나 찻잔, 다과용 식기 등으로도 판매되고 있다. 꽃, 나비, 새 등 자연적 문양을 담으며 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 매력이 있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은 ‘터키 작가’라기보다 ‘이스탄불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문학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작품을 통해 창조한 등장인물과 서사는 물론 작품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된 이스탄불이라는 실제적 공간까지 새롭게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나는 이스탄불 소설가”라고 말하며 자신의 문학적·공간적 배경이 자신을 키운 도시 이스탄불임을 명확히 한다. 그가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장편 소설 중 ‘눈(雪 2002)’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이스탄불이라는 것을 보면 더 극명해진다. 현재도 이스탄불 중심가에 살고 있으며, 그의 여름 집필실 또한 이스탄불 시에 속해 있는 섬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고 그 선정 이유를 밝힌 것처럼 이스탄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런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탄불을 알고, 상상하고,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파묵이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작가의 본질과 정체성을 통해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작가가 느낀 내밀한 감정과 비밀스러운 영감의 정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언급했을 뿐 아니라 파묵 자신도 당당하게 인정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토로한대로, 이스탄불은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근원이며 총체라고 할 수 있다.
파묵은 그의 처녀작인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로 1979년 터키 밀리예트 신문 소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이어 ‘고요한 집(1983)’을 발표했으며, 역사소설 ‘하얀성(1985)’으로 그의 명성은 국외적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0년에 발표한 소설 ‘검은 책’은 파묵의 작품 중에서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던적인 작품이다.
1994년에 발표한 ‘새로운 인생’에 이어, 1998년 12월에는 동·서양 회화의 충돌과 사랑을 다룬 ‘내 이름은 빨강’을 발표했으며,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됐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는 파묵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2002년에는 ‘눈’을, 2003년에는 자전적 에세이집인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 8월 말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작품이며, 이스탄불 상류층 남성의 집착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을 다룬 신작 소설 ‘순수 박물관’을 내놓았다.
한 작가가 창출한 파급력이란 때로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을 읽은 독자들은 파묵이 서술한 이스탄불을 보기 위해 이스탄불 여행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최근 터키의 한 유력 일간지인 ‘휘리예트’는 ‘스웨덴에서 이스탄불로의 오르한 파묵 여행’이라는 머리기사에서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터키 특히 이스탄불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됐다. … 특히 파묵의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 번역 출판된 후 스웨덴 사람들의 터키 방문이 급증했다”라는 기사를 쓰고 있다. 이는 한 작가가 국가 혹은 도시 브랜드와 이미지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이스탄불’
상술한 바, 파묵은 자신의 소설 대부분에서 그 공간적 배경으로 이스탄불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이스탄불은 밝고, 긍정적이며, 즐거운 곳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스탄불에 사는 주인공들은 우울하고, 결핍감을 느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등장인물들로 설정돼 있다. 파묵의 작품들 중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그 제목에서도 시사하고 있듯이 픽션이 아닌 자서전적 회고록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이 단순한 도시안내 책자나 평면적으로 작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을 나열한 회상록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한 인물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실증적 텍스트임을 느끼게 된다.
파묵은 이 작품에서 자신이 이스탄불에서 어떻게 자랐으며, 주변의 거리들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개인적 경험과 느낌을 통해 서술한다. 즉, 이 작품은 이스탄불이라는 고도(古都)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위대한 작가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이 도시의 비애, 폐허, 몰락 그리고 변방 이미지와 잘 맞물려진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키워드들은 파묵을 비탄에 잠기게 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승화돼 작가로 하여금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하게 만든다.
작가로서 파묵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오스만 제국의 위풍당당한 유산이나,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바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유물 등 고도의 생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낡아가고, 잊혀가는 이스탄불의 몰락의 정서와 가난, 도시를 뒤덮은 폐허가 부여한 비애이지만, 그는 이스탄불의 이러한 음울한 조직을 가슴으로, 사랑으로 품어 안으며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터키의 작가’보다는 ‘이스탄불의 작가’로 불려
한편,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젊은 시절 이스탄불을 변방으로 인식하고, “독서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도 이스탄불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서양으로 여행을 했지만, 이제 내게 있어 세계의 중심부는 이스탄불이다”라고 단언하며 자신의 문학과 삶의 중심부가 이스탄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혹자는 노벨문학상은 파묵에게 수여된 것이 아니라, 이스탄불에 수여된 상이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있었기에 파묵이라는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파묵은 여전히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전망한다. 그의 말처럼, 이스탄불에 태어난 것이 그의 운명이기에 그는 이 운명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나는 이스탄불 소설가”라고 말하며 자신의 문학적·공간적 배경이 자신을 키운 도시 이스탄불임을 명확히 한다. 그가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장편 소설 중 ‘눈(雪 2002)’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이스탄불이라는 것을 보면 더 극명해진다. 현재도 이스탄불 중심가에 살고 있으며, 그의 여름 집필실 또한 이스탄불 시에 속해 있는 섬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고 그 선정 이유를 밝힌 것처럼 이스탄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작가의 고향이자 대다수 작품의 배경
이런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탄불을 알고, 상상하고,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파묵이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작가의 본질과 정체성을 통해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작가가 느낀 내밀한 감정과 비밀스러운 영감의 정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언급했을 뿐 아니라 파묵 자신도 당당하게 인정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토로한대로, 이스탄불은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근원이며 총체라고 할 수 있다.
파묵은 그의 처녀작인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로 1979년 터키 밀리예트 신문 소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이어 ‘고요한 집(1983)’을 발표했으며, 역사소설 ‘하얀성(1985)’으로 그의 명성은 국외적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0년에 발표한 소설 ‘검은 책’은 파묵의 작품 중에서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던적인 작품이다.
1994년에 발표한 ‘새로운 인생’에 이어, 1998년 12월에는 동·서양 회화의 충돌과 사랑을 다룬 ‘내 이름은 빨강’을 발표했으며,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됐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는 파묵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2002년에는 ‘눈’을, 2003년에는 자전적 에세이집인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 8월 말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작품이며, 이스탄불 상류층 남성의 집착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을 다룬 신작 소설 ‘순수 박물관’을 내놓았다.
한 작가가 창출한 파급력이란 때로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을 읽은 독자들은 파묵이 서술한 이스탄불을 보기 위해 이스탄불 여행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최근 터키의 한 유력 일간지인 ‘휘리예트’는 ‘스웨덴에서 이스탄불로의 오르한 파묵 여행’이라는 머리기사에서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터키 특히 이스탄불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됐다. … 특히 파묵의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 번역 출판된 후 스웨덴 사람들의 터키 방문이 급증했다”라는 기사를 쓰고 있다. 이는 한 작가가 국가 혹은 도시 브랜드와 이미지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이스탄불’
상술한 바, 파묵은 자신의 소설 대부분에서 그 공간적 배경으로 이스탄불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이스탄불은 밝고, 긍정적이며, 즐거운 곳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스탄불에 사는 주인공들은 우울하고, 결핍감을 느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등장인물들로 설정돼 있다. 파묵의 작품들 중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그 제목에서도 시사하고 있듯이 픽션이 아닌 자서전적 회고록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이 단순한 도시안내 책자나 평면적으로 작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을 나열한 회상록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한 인물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실증적 텍스트임을 느끼게 된다.
파묵은 이 작품에서 자신이 이스탄불에서 어떻게 자랐으며, 주변의 거리들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개인적 경험과 느낌을 통해 서술한다. 즉, 이 작품은 이스탄불이라는 고도(古都)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위대한 작가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이 도시의 비애, 폐허, 몰락 그리고 변방 이미지와 잘 맞물려진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키워드들은 파묵을 비탄에 잠기게 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승화돼 작가로 하여금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하게 만든다.
작가로서 파묵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오스만 제국의 위풍당당한 유산이나,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바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유물 등 고도의 생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낡아가고, 잊혀가는 이스탄불의 몰락의 정서와 가난, 도시를 뒤덮은 폐허가 부여한 비애이지만, 그는 이스탄불의 이러한 음울한 조직을 가슴으로, 사랑으로 품어 안으며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터키의 작가’보다는 ‘이스탄불의 작가’로 불려
한편,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젊은 시절 이스탄불을 변방으로 인식하고, “독서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도 이스탄불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서양으로 여행을 했지만, 이제 내게 있어 세계의 중심부는 이스탄불이다”라고 단언하며 자신의 문학과 삶의 중심부가 이스탄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혹자는 노벨문학상은 파묵에게 수여된 것이 아니라, 이스탄불에 수여된 상이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있었기에 파묵이라는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파묵은 여전히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전망한다. 그의 말처럼, 이스탄불에 태어난 것이 그의 운명이기에 그는 이 운명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난아 / 번역문학가>
출처 : 대한항공 스카리뉴스 이메일
출처 : 종, 그 울림의 미학
글쓴이 : 하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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