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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는 연중 온화한 날씨, 태평양으로 열린 항만, 인근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들로 일본인들이‘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미항이자 같은 이름의 현청(縣廳) 소재지다.
남서쪽 이부스키(指宿)와 가고시마 만 밖 두 개의 큰 섬 다네가시마(種子島), 야쿠시마(屋久島)와 삼각지대를 이루는데, 이를 녹색삼각지대라 부르며 대자연 체험과 온천 및 골프의 명소로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더 남쪽 태평양으로 이어지며 아열대풍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도카라(吐喝喇)·아마미(奄美) 군도(群島) 등 145개의 섬을 아우르며 섬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일본 열도 남단 ‘동양의 나폴리’
에도시대 지명 사쓰마(薩摩)를 지금도 즐겨 사용하는 가고시마 시민들은 이 시대 유물과 유적들은 물론 전통까지도 잘 보전해 오고 있다. 또한, 일본 열도의 서남단 도시로서 일찍이 한국과 중국, 인니반도 등 외국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여 개방적이고 쾌활해 외지 방문객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다.
가고시마는 품질 좋은 농수산물들을 많이 생산해 일본의 식량 공급 기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자 관련 산업기술의 발달과 집적으로 다네가시마에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현대과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로켓 발사시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가고시마의 명소와 명물들은 종종 시의 아이콘으로 사용되는 사쿠라지마(櫻島)의 활화산과 세계 유일의 흑모래 찜질을 할 수 있는 이부스키 온천, 또 32곳이나 되는 국제 규모의 골프장,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들로부터 시작돼 세계적인 명품이 된 도자기 사쓰마야키(薩摩燒), 자체 브랜드만 500개가 넘는 증류식 고구마 소주,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진 무, 육질이 가장 부드러운 토종 흑돼지 요리로 관광객들을 매료시킨다. 세계 정상들이 묵은 최고급 호텔들을 비롯한 다양한 숙박업소나 곳곳의 상가, 유명 식당에서 이들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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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에는 이 밖에도 일본 100대 명산에 드는 산이 3개나 있는데, 작은 후지산이라 부르는 가이몬다케(開聞岳·924미터), 가라쿠니다케(韓國岳·1천700미터), 미야노우라다케(宮之浦岳·1천936미터)가 그것이다.
이중 미야노우라다케가 있는 야쿠시마는 일본에서 3곳밖에 없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규슈 최남단 사타미사키(佐多岬)로부터 약 60킬로미터 해상에 떠 있는 둘레 약 130킬로미터의 원형 섬. 울창한 삼림과 수령이 수천 년 된 삼나무들이 자라고, 꽃사슴과 원숭이 등 야생동물이 살고 있고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붉은바다거북의 산란 해변이 있어 조심스럽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고 있으며, 생태관광지의 보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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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지마는 원래 가고시마 만 안쪽 남서쪽에 솟은 섬이었으나 1914년 30번째 용암을 쏟아내며 오스미 반도와 연결돼 육지가 됐다.
현재 활동 중인 두 분화구에서의 화산재 분출 광경은 산 남서쪽에서 잘 관찰할 수 있는데, 수시로 뿜어대므로 관광객들은 웬만하면 대장관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 아래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면 대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지만 시민들은 분출이 잦으면 안도하고 더디면 불안해 한다. 자주 뿜어내야 대폭발이나 지진 발생의 위험도가 덜해진다고 믿기 때문.
가고시마 시내에서 불과 4킬로미터 거리로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24시간 운영되는 페리로 15분이면 오갈 수 있다. 화산재 분출 광경을 잘 조망할 수 있게 서쪽 안전 방향과 장소에 아리무라 용암전망대, 유노하라 전망소, 더 먼 해변에 길이 60미터의 미치노에키 타루미즈(道の驛 垂水)의 무료 족탕까지 조성해 놓고 있다.
사쿠라지마의 후루사토 온천은 바다를 면한 남녀혼욕 노천온천으로 유카타를 입은 채 입욕한다. 생각보다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다온천이란 매력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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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온천’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이부스키(指宿) 온천이다. 가고시마 시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인 이부스키 해변의 검은 모래밭은 세계에서 유일한 모래찜질 온천이다. 바다로 흐르는 온천이 모래에 유황과 각종 광물질을 스미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사키 호텔, 고 노무현 대통령도 다녀간 하쿠수이칸 호텔 모래 찜질 온천이 유명한데 속옷까지 다 벗고 유카타만 걸친 채 모래 위에 누우면, 일꾼들이 삽으로 모래를 떠 머리 부분만 남기고 온몸을 덮어 준다. 5분쯤 지나면 온몸에 땀이 배는데 보통 15분 정도를 권한다. 모래와 땀을 씻고, 노천탕을 비롯한 대형 온천까지 즐기면 신선이 따로 없다. 관절염, 신경통, 갱년기 장애, 피부 미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니 금상첨화인 셈.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가고시마에서라면 이 상태에서 한잔의 소주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가고시마는 화산재 토양에서 재배되는 고구마가 옛날부터 유명해 이를 이용한 증류식 소주 산지로 명망이 높기 때문. 이른 바 청주(사케)는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40년 역사를 가진 이곳 소주는 자체 브랜드만 500개가 넘고 모리이조(森伊藏)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건배용으로 사용,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미타케(三岳), 마오(魔王) 등은 공급이 달려 시중에서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 하쿠수이칸에서는 온천 후 작은 잔으로 시음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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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기온이 섭씨 18도로 온화한 날씨 덕분에 골프장들은 연중 문을 연다. 이 지역 32개의 골프장 중 최고로 쳐주는 GC는 이부스키 GC다. 그 이유는‘작은 후지산’으로 불리는 가이몬다케 산허리에 위치해 골퍼가 한 쪽으로는 명산, 한쪽으로 남태평양 바다를 보며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11월 카시오 오픈이 열리고 타이거 우즈와 점보 오자키도 다녀가 더 유명하다.
또 가고시마 시 남쪽으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가량 거리의 작은 섬 다네가시마에도 세계적인 골프코스가 있다. 차로 2~3시간이면 일주할 만큼 작은 섬이지만 겨울에도 골프가 가능하고 유채꽃밭과 사탕수수밭이 제주도와 하와이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풍경이라 한국인들이 좋아한다.
가고시마에는 여러 많은 볼거리들이 있지만 아름다운 두 곳의 정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고시마 시에 있는 센간엔과 이부스키에 있는 지란의 정원이다. 센간엔은 이소테이엔(磯庭園)으로도 부르는데 1658~1661년 시마즈(島津) 가문의 별장에 만든 정원. 약 5만 평방미터의 경내에는 고덴(御殿)과 함께 정원수, 아기자기한 연못과 폭포 등이 있고, 일본 최초의 가스등인 학등롱(鶴燈籠)과 역시 일본에 최초로 조성됐다는 식용 맹종죽(孟宗竹) 숲 등 볼 만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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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바다와 사쿠라지마의 자연을 앞뜰 정원으로 끌어들여 긴코만(錦江灣)을 연못으로, 사쿠라지마를 동산으로 삼은 풍경은 누가 봐도 일품이다. 뒤뜰로 가는 한 곳에는 계곡수를 이용, 우리나라 경주 포석정처럼 완만한 원형의 흐름을 만들어 봄이면 전통 하이쿠(俳句) 놀이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2008년 일본 전역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篤姬)’를 이곳에서 찍어 더 유명해졌다. 아츠히메는 9월 7일부터 국내에서도 채널 J로 방영되고 있다.
지란의 정원은 에도시대 사쓰마 지역 무사촌의 집집마다 잘 조성해 놓은 일본 전통 정원들로 유명한 곳이다. 약 18만6천 평방미터의 동네는 작은 교토라고도 부르는데, 250~300년 전에 지어진 집 90여 채가 들어서 있는데 그 중 7무사의 집에 조성된 정원이 옛 모습을 잘 지켜와 1981년 일본의 중요전통건물군 보존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기초석, 차나무, 나한송으로 3단 담장을 만들되 원근의 산 등성이 선과 어긋나지 않게 다듬고 그 안에 산수화 같이 예쁘게 조성한 정원들이 일본의 대표 정원들을 잘 대변해 준다.
이 밖에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일본 100대 명산 가라쿠니다케 등을 보고 걸으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 기리시마(霧島)와 더 남쪽 아열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아마미 군도도 가고시마의 숨은 명소로 여행 마니아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자료 협조=가고시마현 관광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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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가 105킬로미터로 주봉 해발 1천936미터인 미야노우라다케를 비롯해 1천800미터 이상의 봉우리 6개가 솟아 있고 울창한 원시림 속에서 인간과 사슴과 원숭이가 어울려 살고 있어 1993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자연관찰림’이라고도 부르는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 峽) 에는 30분, 1시간, 2시간 30분 등 3종류의 산책코스를 비롯해 신비스러운 ‘원령공주의 숲’도 있어 이를 답사하며 삼림욕까지 즐길 수 있다. 국내항공, 배편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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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투리 가고시마의 옛 이름은 사쓰마. 일본 내에서도 사투리가 심한 편이다. 사쓰마이모(고구마)와 사쓰마아게(튀김)가 유명한데, 이곳에서는 사쓰마이모를 가라이모라고, 사쓰마아게를 쓰케아게라고 부른다. 물건을 사고 나올 때 “오야또사아(수고하세요)”라고 해보면 점원들 눈이 둥그레질 것이다.
▶ 팁 문화 한국과 비슷하다. 단,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면 웃으면서 “아리가토 사게모시타”라고 인사할 것(가고시마 사투리로 ‘감사합니다’라는 뜻).
▶ 미리 준비해 가면 좋은 것들 비가 많은 곳이므로 우의나 우산을 준비하고, 사쿠라지마를 둘러볼 때는 카메라 같은 데 화산재가 묻지 않도록 조심한다. 야쿠시마는 아래 쪽은 아열대지만 숲 속이나 산 정상부는 쌀쌀하므로 덧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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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보모치(兩棒餠) 센간엔 내 휴게소에서 파는 일종의 일본 떡. 옛날 무사가 칼을 옆구리에 차고 있는 것을 ‘잔보꽂이’라고도 했는데, 떡에 두 개의 작은 대나무를 꽂은 모양이 무사의 잔보꽂이와 비슷하게 생겼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떡은 사쓰마 무사로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고 현재는 센간엔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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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톤토로라면 가고시마 명물 흑돼지 고기를 얹어내는 생라면인데, 맛이 걸쭉하다. 가고시마에서 개발돼 일본 전국에 택배로도 판매하고 있다. 자그만 가게에는 톤토로라는 로고와 마스코트를 개발, 이를 그려 넣은 티셔츠까지 팔아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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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 목각 야쿠시마에서 예전에 벌채한 삼나무로 만든 목각들이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예술작품으로까지 격상돼 판매되고 있다. 간단한 젓가락에서부터 인형은 물론 무겁고 큰 탁자까지 다양한데, 이들 제품은 특히 향이 좋아 장식품으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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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시내에서 서쪽으로 50여 분 가량 달리면 히가시이치키(東市來)의 아담한 시가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택시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미야마(美山)라는 마을이 있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이‘나에시로가와(苗代川)’, 조선인 도공(陶工)들이 전쟁 포로로 끌려와서 뿌리내린 유서 깊은 고장이다.
400년 전에 일본 땅으로 잡혀와 도자기를 만들면서 살아온 집 안에서도 14대 당주인 심수관(沈壽官) 씨의 작업장 ‘수관도원(壽官陶苑)’의 명성은 지금도 자자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관광지로도 유명한 수관도원
지금의 수관도원은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도자기 수업을 한 젊은 당주 15대 심수관이 관리, 관장하고 있으나, 그의 아버지 14대 심수관이 후견인 격으로 뒷일을 보살피고 있다. 1976년 필자는 MBC-TV에 쓸 연속드라마 ‘타국(他國)’을 준비하기 위해 14대 심수관을 취재하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14대 심수관의 외모는 어느 모로 뜯어보나 그 골격부터가 한국 사람이다. 14대 심수관의 피에는 단 한 방울의 일본 사람의 피도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국적이 일본이요, 오사코 게이키치(大迫惠吉)라는 일본 이름을 쓰고 있다 해도 그의 외모가 한국인 모습이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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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먼저 밝혀 둘 것은 심수관이라는 이름이다. 처음으로 일본 땅으로 잡혀온 초대는 심당길이었고, 2대가 심당수(沈當壽), 3대가 심도길(沈陶吉), 4대가 심도원(沈陶圓), 5대가 다시 심당길, 6대가 심당관(沈當官), 7대가 심당수(沈當壽)…, 이런 식으로 11대 심수장(沈壽藏)까지가 다른 이름을 쓰다가, 12대에 이르러 지금의 심수관이 굳어지면서 13대, 14대, 15대로 습명(襲名)되고 있다.
400여 년 전, 조선인 포로들은 지금의 구시키노(串木野) 어항에 상륙했다. 일본 측 기록인 ‘사쓰마번사(薩摩藩史)’에 따르면 구시키노의 시마비라하마(島平浜)에 박평의(朴平意)를 비롯한 그 아들 정용(貞用) 등 43명이 도착했고, 여기서 조금 내려가서 가미노가와(神の川) 하구에 김해(金海)를 비롯한 남녀 10명이, 그리고 규슈의 남단을 돌아서 가고시마에 남녀 20명이 도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400여 년 전 잡혀간 조선인 도공들
구시키노에 도착한 조선인 도공들이 최초로 도자기의 가마를 연 것은 도착한 다음 해인 1599년이었고, 이때에 처음으로 구어진 그릇은 검은색이었다. 물론 백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미 북쪽 지방인 아리타(有田)에서는 같은 조선인 도공 - 이삼평을 비롯한 -들에 의해 백옥 같은 백자가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번주 시마즈(島津)는 도공 박평의에게 쇼야(촌장)의 벼슬을 내리고 말과 병사들을 휘하에 배치하는 등 파격의 은전을 내리면서 백토를 찾는 일에 전력할 것을 독려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백토가 찾아진 것은 조선인 도공들이 잡혀온 지 무려 16년 후인 1614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백도의 질이 좋지 않아서 사쓰마야키의 명성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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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관 가문에서는 자신들의 도자기가 외부에 나가는 것을 금기로 여겼으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정계 진출을 노리다가 뒤늦게 도공의 길로 뛰어든 14대 심수관의 용단으로 도쿄에서 개인전을 갖게 된다. 오타하라(小田原)백화점에서 열린 14대 심수관의 첫 도자기전은 전 작품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기에 일본 최고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쓴 ‘고향을 어찌 잊으리까’에 힘입어 심수관 일가와 사쓰마야키는 일약 일본 도자기의 명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2대 작품 빈 세계박람회 대상 수상
일본의 문화는 그 원류를 한국에 두고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경우에도 일본의 것이 되어 정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도자기가 그렇고, 옻칠이 그렇고, 절이 그렇고, 불상이 그렇고, 학문이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일본의 문화가 모두 우리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대한 14대 심수관의 말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사쓰마의 도토(陶土)는 한국의 흙에 비한다면 마치 모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선조님들은 그런 흙으로 사쓰마야키를 구워냈고, 그 사쓰마야키는 일본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긍지에 힘입어 세계적인 도자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봉승 / 극작가·예술원 회원>
출처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이메일
출처 : 종, 그 울림의 미학
글쓴이 : 하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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