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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몬 오카야마

DRAGON 2010. 11. 15. 16:04

 
  
 
오카야마(岡山)는 일본 혼슈(本州) 서부의 현으로 주코쿠(中國)와 시코쿠(四國) 지방의 관문이다. 두 지방을 나누는 세토(瀨戶)내해를 안고 풍경과 풍물에서 강한 일본다운 분위기를 갖고 있어 특히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또 예로부터 온난하고 맑은 날이 많아 ‘청명한 고장’으로 불리며 살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했다. 지리 조건과 자연 환경도 빼어나 주고쿠산지에 둘러싸인 북쪽은 아름다운 자연과 임·농산물이 풍부하고 남쪽 세토내해 연안은 풍성한 수산물들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았고, 동서를 묶는 육·해로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에도 오카야마공항을 비롯해 신칸센 등 철도,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고속도로 등 서일본이나 시코쿠로의 관문으로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예부터 ‘청명한 고장’이란 애칭도

현청 소재지이자 중심 도시인 오카야마시는 오카야마평야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도심 한가운데로 아사히가와(旭川)가 흐른다.

옛날에는 기비(吉備)왕국(5세기경)으로 번창해 문화·역사적으로도 유명하다. 중세에는 다이묘(大名) 이케다(池田) 가문이 통치했던 지역으로서 교역 중심지로 발전했다.

세토내해 연안, 동해안, 시코쿠의 도시들과 연결된 훌륭한 철도망을 가지고 있다. 하구에 건설된 항구라 수심이 얕기 때문에 외항의 역할은 다마노(玉野)가 맡고 있다.

대표적인 명소는 오카야마의 상징인 오카야마성과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고라쿠엔(後樂園)’. 고라쿠엔은 1786년에 조성된 회유식 정원으로,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북에 별 3개의 평가를 받아 최근에는 서양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고, 오카야마성은 외관이 검은 색이라  ‘까마귀성(烏城)’으로 불리며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북 별 3개  평가

또한 북동쪽에 있는 비젠(備前)시는 8세기 이래 도자기를 생산해온 일본 최고의 도예 중심지로 오늘날까지도 실력 있는 장인들의 창작 활동과 제품들로 그 명성을 잘 유지해 필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현의 면적은 인접한 섬들을 포함해 7천86평방킬로미터. 현 전체 인구는 200만여 명, 오카야마시의 인구는 70만여 명이다. 
  
 
오카야마시는 도시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명소도 찾기 쉬워 보통 걸어 다니면서 관광을 한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아끼고 편하게 다니려면 JR 오카야마역을 출발해 주요 명소 역을 들르는 전차나 노선버스를 이용한다. 전차는 오카야마성과 고라쿠엔 부근인 시로시타(城下)역에 서는 히가시야마센(東山線)을 타는 게 좋다. 오카야마역 히가시구치(東口)나 주오구치(中央口)에서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있는 전차역에서 탑승할 수 있다.

오카야마시는 하루나 이틀 정도면 시내 주요 명소를 다 돌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명소는 오카야마성과 이곳에 면한 고라쿠엔 그리고 시내에 있는 몇 곳 미술관과 연주회장들이 전부다. 따라서 이왕 방문한다면 근교에 있는 구라시키(倉敷)시와 세토(瀨戶)대교도 함께 묶어서 돌아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도 2~3일이면 충분한데, 알뜰한 사람들은 첫날 오카야마시와 세토대교를 돌아보고 다음 날 기비지(吉備路)역과 구라시키시를 돌아보는 것을 끝으로 하루를 벌기도 한다.
 
시내 관광은 도보로, 전차 이용하면 더 편리

오카야마 시내 관광은 시의 상징인 오카야마성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아무래도 시내를 먼저 관망하는 게 시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히가시야마센 시로시타(城下)역에서북동 방향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오카야마역에서부터 걷는다 해도 약 25분이면 닿는다.

지금 보는 오카야마 성의 모습은 1960년대 복원된 것이다. 처음 축조는 16세기 다이묘(大名)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했고, 나중에 고바야카와(小早川) 및 이케다(池田) 가문이 약 300년간 거주하다 메이지시대 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파괴됐다.

오카야마성은 외벽이 검어서 까마귀의 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시에 있는 히메지성이 백로의 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빗댄 것이다. 덴슈카쿠(天守閣)는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로 1966년 재건됐다. 맨 위층은 전망대로 고라쿠엔과 오카야마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드는 곳이다. 2층은 다이묘 가마 체험장. 옛 가마를 복원해서 관광객들이 직접 타볼 수 있게 해놓았다. 곁에서는 옛날 영주와 공주의 의상을 입어보는 코너도 무료로 운영하는데, 대상이 한정적이라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까마귀성’ 별명 가진 오카야마성

덴슈카쿠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고라쿠엔은 성 옆 아사히가와(旭川) 건너편에 있다. 오카야마성에서 쇠로 만든 쓰키미바시(月見橋)로 연결되는데 고라쿠엔은 가나자와(金澤)의 겐로쿠엔(兼六園), 미토(水戶)의 가이라쿠엔(偕樂園)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에 드는 명소다.

이케다(池田) 영주가 1686~1700년에 만든 것으로 원래는 오카야마성 뒤에다 조성한 것이어서 고엔(後園)으로 부르다가 이 정원을 처음 만들 때 목적이‘먼저 근심하고 나중에 즐거워한다(先憂後樂)’여서 이를 존중해 1871년부터 고라쿠엔(後樂園)으로 부르고 있다.

주로 영주의 휴식과 귀빈 접대 장소로 활용됐는데, 때에 따라서는 일반 서민의 입장도 허가돼 지방 영주와 함께 정원을 즐겼다고 한다.

13만 3천 평방미터의 면적에 잔디가 깔린 것이 특징인 이 회유식 정원은 맑고 깨끗한 냇물이 흐르고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들과 아름다운 꽃들, 일본 전통양식의 건축물 등이 자리해 도시의 소란을 잊게 해준다. 이 중에서도 거실로 쓰던 엔요테이(延養亭) 정자는 경치가 좋아 영주가 즐겨 찾던 곳이다. 또 매화림, 벚꽃, 철쭉, 단풍 등 사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으며, 여름에는 양초 등으로 환상적인 정원 야경을 연출하고(올해는 7월 29일부터 8월 15일까지 실시), 설날에는 두루미를 풀어 정원에서 놀게 해 상서로움을 조장하기도 한다. 

관람 가능 공간은 전체 면적의 1/4도 못 된다. 하지만 이도 너무 넓어 잘못하면 엉뚱한 곳만 둘러보기 쉽다. 오카야마성에서 쓰키미바시 철교를 건너 남문으로 입장, 시계 반대 방향으로 관람하며 정문으로 나가기를 권한다. 입구에서 한글판 안내지도를 구할 수 있다. 개방 일시는 오카야마성과 같다. 단 온실 관람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일반 서민들도 함께 즐긴 고라쿠엔

다음은 시내 미술관 순례로, 먼저 하야시바라미술관(林原美術館)을 찾아보자. 오카야마성의 니노마루(二の丸) 유적에 위치해 있어 전차를 이용하려면 오카야마성과 같은 시로시타(城下)역에 내리면 된다. 남동쪽으로 도보 8분 거리. 성주인 이케다 가문이 소장했던 보물과 하야시바라(林原) 컬렉션을 볼 수 있다. 한·중·일 3국의 고미술품도 볼거리다.

오카야마 현립미술관도 히가시야마선 전차로 시로시타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도보 3분 거리에 있다. 화강암으로 장식된 현대적인 외관에 내부에는 오카야마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액세서리나 포스터, 그릇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있고, 부속 홀에서는 강연회나 음악회 등을 수시로 개최해 관심 있는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오카야마 현립박물관은 오카야마역에서 후지와라(藤原) 단지행 전차 또는 다케타(竹田)행 버스를 타고 고라쿠엔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1988년 오카야마현 100주년을 기념해 고라쿠엔 외원(外苑)에 세운 박물관으로 오카야마 전역에서 발굴한 석기시대 이후 근대까지 각종 사료와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카야마 시립오리엔트미술관은 일본에서 단 3곳뿐인 고대 동양 미술관으로 널찍한 공간에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출토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문명 토기와 모자이크, 장신구 등 약 3천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시로시타 정류장에서 북쪽으로 도보 2분 거리에 있다.

오카야마 심포니홀은 오카야마의 문화 중심지로, 최고의 설비로 음의 여운이 2초나 남는 음향 효과를 자랑한다. 2천여 석의 대공장에서는 클래식 음악은 물론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콘서트를 연다. 역시 시로시타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세토대교도 볼 만

이 밖에도 오카야마현의 남부 구라시키시는 옛날부터 물자수송의 거점이며, 에도시대에는 나라의 직할령으로서 번창했는데 요즘은 ‘흰벽의 마을’, ‘문화의 마을’로 불리며 특히 젊은 여성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다. 오카야마역에서 전철로 약 15분 걸린다.

강변의 버드나무와 어우러진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흰색 저택들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이곳에 1930년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만든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이 있다. 모네, 고갱, 피카소 등 인상파 거장의 회화 작품과 로댕의 조각을 포함, 동서양을 불문하고 수작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엘 그레코의 16세기 작품 ‘수태고지’가 유명하다.

20세기 일본 최대 프로젝트의 하나인 세토대교는 1978년부터 10년여 세월 동안 건설됐다. 5개의 섬을 연결하는 6개 다리의 총칭인데, 해상 부분의 9.4킬로미터로 도로와 철도 겸용다리로 세계 최장을 자랑한다. 세토내해를 건너는 웅대한 다리의 모습은 바다에 뜬 섬들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해 특히 저녁노을 풍경이 압권으로‘일본 석양 100선’에 뽑혔다.
 
<자료협조=오카야마현청>
 
 
비젠야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6대 가마의 하나로 그 중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오카야마현 비젠시 일대에는 약 1천 년 전부터 많은 가마가 전래되고 있으며 비젠거리의 가마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그간 많은 작품과 도예가를 배출했는데, 이 곳의 도요에서는 양질의 도토를 빚어 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 옛 방식의 오름 가마에 넣고 소나무 장작불로 천천히 구워낸다. 요즘도 우수한 300여 명 도공들의 작업 광경은 훌륭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또 관광객들을 위해 비젠야키의 흙빚기 체험장을 마련, 물레를 사용해 자신만의 비젠야키를 만들 수도 있어,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물론 젊은이들도 즐기는 인기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옛날부터 일본 교통의 대동맥인 세토내해, 그 바다에 떠있는 섬 문화 및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서로 어울리는 ‘제1회 세토우치(瀨戶內) 국제 예술제’가 올해 7월 19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최된다. 시코쿠 북단 가가와(香川)까지 펼쳐지는 아름답고 푸른 세토내해와 7개의 섬을 무대로 이 지역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이벤트다.
예술제가 열리는 섬 가운데 하나인 나오시마(直島)는 오카야마에서 배편으로 불과 20분 거리다. 이 곳은 한가롭고 소박한 섬의 모습과 현대 미술이 융합한 새로운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했다. 섬의 자연이나 고유한 전통 구조물에 현대 예술과 건축물을 접목시켜 특별한 공간과 경험을 창조해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혼무라(本村)지구에서는 고가 등을 개·보수해 작품화한 ‘이에(집) 프로젝트’를 볼 수 있고,‘지중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수련’이외에 영구 전시돼 있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팁 문화  호텔이나 레스토랑, 택시에서 기본적으로는 필요없다.  
 치안 치안은 좋다. 한밤 중이 아니면 밤에 외출해도 괜찮다. 
 교통  시내는 작기 때문에 노면 전차로 이동하면 좋다. 산책도 가능하지만 렌탈 자전거(JR 오카야마역)가 있으므로 이용하자. 
 예절과 풍습  일본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휴대 전화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 밥공기나 작은 접시는 들어 올려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 
 
 
 
 
과일  복숭아(백도) ·포도 등 청정 과일이 유명하다. 온난한 기후로 풍부한 태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이곳 과일은 국내에서 ‘과일왕국’이란 지위를 확립했다. 특히 백도는 포도 ‘피오네, ‘머스캣’과 함께 전국 생산량 1위를 자랑한다. 빛나고 신선하며 달고 풍부한 향기가 일품이다.
 
바라즈시  세토내해에서 나는 신선한 해산물과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스시. 에도시대 때 주군이 “국물 음식 하나, 반찬 하나만 먹도록 하라”는 절약 명령을 내리자 민중들의 지혜로 탄생된 음식이다. 지금도 축제나 경사 때 각 집안에서 자기 집만의 독특한 바라즈시를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다. 
 
히루젠(蒜山) 고원 유제품  현의 북부 히루젠 고원은 해발 500∼600미터의 광대한 목장지대로, 일본 최대의 저지소 산지. 저지소의 우유는 영양가가 높고, 농후한 맛으로 유지방분도 풍부해 이 저지소의 우유를 사용한 요구르트나 아이스크림, 치즈 등 유제품은 맛이 진해 전국에 알려졌다. 현내 다른 지역에서도 맛볼 수 있다.        
 
 
 
 
▶ 구라시키 범포  면사로 짠 두꺼운 천. 배의 돛이나 텐트, 가방 등에 사용되는 천연소재로 내구성·환기성이 우수하다. 구라시키에서 20세기 초부터 계속된 범포산업이 지금은 전국 생산량의 7할을 차지한다. 전통 기술에 현대적인 감각을 도입한 새로운 제품을 계속 내놓고 있다.
 
▶ 고하라 칠기  히루젠(蒜山) 지역에서 600년 이상 전통적으로 내려온 공예기술로 만든 칠기다. 밤나무를 둥글게 깎아 건조시킨 후 밤색 또는 붉은색의 칠을 엷게 바른 후 닦아내는 기법이 특징으로, 나뭇결을 살린 접시, 주발, 대접 등이 제작되고 있다.
 
▶ 구라시키 유리 제품  불어 만들기 기법의 유리 제품으로, 독특하고 부드러운 선과 촉감, 복고적 분위기의 형과 색이 매우 이름답다. 하나를 손에 넣으면, 차례차례 갖추어 세트를 만들고 싶을 만큼 애착이 가는 유리 제품이다. 주제를 정해서 구입하는 것도 좋다.

 
 
  
오카야마의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시에는 우시마도(牛窓)란 작은 포구가 있다. 이 포구는 바다와 섬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유명한데, 특히 이 지역 특산물인 올리브 나무들과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으로 일본의 에게해라고도 부른다. 실제로 우시마도의 농원에서는 약 2천 그루의 올리브를 재배하고 있는데,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세토내해 조망이 가능하다.

이곳에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그리스풍의 절경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이 하나 있다. 이 포구에 세워진 개화기풍의 서양식 건축인 ‘우시마도 카이유(海遊) 문화관’이다. 우시마도는 에도시절부터 한일 선린우호의 사절단인 조선통신사가 기항하던 곳이라 그 당시 조선통신사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현판에 ‘해유문화관’이라고 한글을 병기해 놓았다.
 
조선통신사 기항지 우시마도

이 자료들과 관련 있는 민속 하나가 우시마도를 더욱 빛내주고 있는데 바로 조선통신사가 전했다는 ‘우시마도 가라코(唐子)춤’이다. 오카야마현 중요 무형 민족 문화재로 지정된 이 춤은 매년 10월 넷째 일요일 야쿠(厄) 신사 경내에서 시연한다. 그런데 이때 춤을 추는 주인공은 놀랍게도 선명한 조선풍 의상을 입은 남자 어린이 2명이다.

두 무동은 집에서 신사까지는 어른들의 목말을 타고 입장해 큰북, 작은북, 피리의 소리와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목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신사에서 추는 신령한 춤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디디면 부정을 탄다고 보기 때문이란 것. 그런데 춤사위도 아주 특이한데다 두 무동이 쓴 모자도 장식이 많은 것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의 초립처럼 생겼고, 의상마저 상의는 조선의 양반 무관 정장과 유사하며, 하의도 조선의 바지와 똑같이 생겼다. 더욱이 이들이 주고 받는 말들까지 한국말과 비슷한 것이 많아 이채롭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춤이 조선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추측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래로 한국과 일본은 교역이 번성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등의 전쟁이 있은 후 국교가 단절돼 버렸다. 그러던 것이 에도시대(1603~186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국교를 회복했다. 그 후, 에도 막부는 12회에 걸쳐 친선 우호의 사절단, 조선통신사를 맞이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오는 경로는, 우선 배로 대마도로 건너와 세토나이카이의 몇 항구를 거쳐 동쪽으로 나아가 오사카(大阪)에 상륙, 거기에서 육로로 에도(현재의 도쿄)까지 도착해 반대 코스로 왕복했다.

사절단 일행은 정사와 부사를 비롯해, 서기, 통역, 유학자, 서가, 화가, 의사, 승려는 물론 그 외 기예 단원이나 악대 등도 합해서 500명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었다고 한다. 일본 측에서 나온 경호나 하역을 위한 인원까지 합하면 2천 명을 넘는 대행렬이었을 것이다.
 
‘희대의 구경거리’였던 500여 통신사절단원

이들의 방문 횟수가 도쿠가와 시대 약 300년 동안 12회라고 하는 것은, 평균 25년에 한 번으로 이곳 주민들은 일생에 한 번인가 두 번밖에 조우할 수 없는 드문 것이어서 조선통신사가 당도할 때면 이런 진기한 차림의 사람들이나 공연, 선물로 가져오는 동물(코끼리로 추측됨) 등을 구경하려고 우시마도 가도에는 엄청난 구경꾼이 몰려 들었다.

이때 조선통신사 방문단에 따라 온 기예단의 꼬마 무동이 춤을 춘 것을 우시마도 주민들이 흉내 냈던 것이 오늘날 이 가라코춤이라고 한다(일설에는 조선통신사를 환영하는 춤이라기도 하고 조선통신사가 전래해준 춤이라고도 한다).

아이들을 목마를 태우고 땅에 내리지 않는 것은 일본의 풍속이고 일본 어린이 춤에도 있지만 한국의 농악이나 남사당 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또 이들이 착용한 모자와 의상도 당시 조선의 농촌에서 농부들이 풍년을 빌며 놀던 풍물놀이 등에 사용되던 것, 즉 조선통신사를 따라온 무동들이 착용하던 것을 간략하게 변형시킨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마에 그리는 붉은 십자가는 일종의 부적으로 마(魔), 즉 나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는데 정설은 확실히 모른다고 한다.

이 춤이 조선통신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춤의 이름 가라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조선통신사 시절 일본에서는 대륙을 가라(唐)라고 부르고 있던 것 같다. 이 때는 일본이 쇄국정책으로 해외와 공식적인 국교가 없었던지라 사람들은 대륙에 관계하는 것을 ‘가라쭛쭛쭛’라고 말했다. 그리고 코(子)는 ‘아이’란 뜻으로, 이문화 색이 강한 조선통신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가라코춤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춤사위, 가사, 의상 모두 조선 것 닮아

현재 이 춤은 전에 이 무동을 맡았던 동네 선배들로부터 전승되고 있다. 이들은 동네 출신 4~5세 되는 남자아이 중 서로 키나 생김새가 비슷한 두 명을 선정, 7월부터 2~3개월 연습시킨 후 시연에 참가시키는데, 한번 뽑히면 5~6년 정도 계속한다. 이 동네에서는 무동으로 뽑히는 아이들은 물론 그 부모들도 영광으로 생각하며 열심 춤을 배우고 추도록 최선을 다한다. 

매년 10월 말이면 사랑스러운 두 어린이가 약 1시간 남짓 추는 이국 정서가 넘치는 가라코춤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우시마도로 몰려온다.

그런데 만약 한국 사람들이 이 춤을 보면 어떨까? 400년 전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통신사 풍물패들이 추던 무동춤이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현재 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현장을 본다면…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춤사위까지 해석할 수 있다면 오카야마를 찾는 즐거움 하나가 더 추가되지 않을까.
출처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이메일 100712현재
 
출처 : 종, 그 울림의 미학
글쓴이 : 하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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